전쟁과 지정학적 긴장은 금 가격을 일시적으로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상승 동력은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이 같은 분석을 내놓으며, 앞으로 1년 안에 금 가격이 온스당 4000 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전망의 핵심 변수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이 아닌 미국의 재정 적자다.

BofA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언제든 격화할 수는 있지만, 전쟁 그 자체는 지속적인 금값 상승 요인이 되기 어렵다”며 “금의 향방은 결국 미국의 예산 협상과 재정 적자 규모에 달렸다”고 밝혔다. 만약 적자가 줄지 않고 시장 변동성까지 겹친다면,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따라 금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는 거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공습을 시작한 이후 일주일간 금 가격은 2% 하락했다. 지정학적 위협이 존재하는 가운데, 미군의 B-2 스텔스 폭격기가 태평양 상공으로 이동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시설에 대한 벙커버스터 투하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는 점도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금값 전망은 여전히 상승 쪽에 무게가 실린다. 현재 금 가격에서 18%가량 상승한 온스당 4000 달러를 1년 내에 기록할 수 있다는 게 BofA의 전망이다.

문제는 지금 미국 의회에서 통과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 및 지출 법안이다. 하원과 상원 버전 간 차이를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법안의 구조적 효과는 향후 수조 달러에 이르는 추가 재정적자를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채권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번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해 적자를 메워야 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과 맞물려, 기존에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미국 달러도 약세를 보이고 있어 금에는 추가적인 상승 여지가 생기고 있다.

실제로 세계 중앙은행들은 최근 몇 달간 미국 국채를 480억 달러어치나 처분했다. 반면, 금 매입은 지속되고 있다. 이는 팬데믹 이전부터 시작된 추세로, 특히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금 보유를 크게 늘리는 모습이 뚜렷하다.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의 조사에 따르면, 지정학적 불안정성과 무역 분쟁 가능성이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 대신 금을 선호하게 된 핵심 배경으로 나타났다. 현재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은 미국 공공부채의 약 18%에 해당하는 규모로, 이는 10년 전 13%였던 수준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BofA는 “이 수치는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게 경고 신호가 될 수 있다”며 “무역 리스크와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지속될 경우, 중앙은행들은 미국 국채보다 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흥미로운 점은, 아직까지 투자자들이 금에 ‘과도하게 베팅’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점이다. BofA에 따르면, 현재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중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3.5%에 불과하다.

BofA는 “의회 예산 협상의 최종 결과와 무관하게 미국의 재정적자는 높은 수준에서 지속될 것”이라며 “금리 변동성, 달러 약세가 겹칠 경우 금은 더욱 탄탄한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특히 미 재무부나 연준이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설 경우, 그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 글 Jason Ma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