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이본 쉬나드①] “파타고니아는 실패하면 안 된다”에서 이어집니다.
등반가 출신인 이본 쉬나드는 실패를 두려워하진 않지만 큰 모험을 즐기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자신과 가족이 가진 파타고니아 지분 전량을 비영리 재단과 신탁사에 양도한 것. ‘망해가는’ 지구를 지키고 파타고니아의 지속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이는 창업 50년,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기업이 된 비결일지 모른다.
벤투라=유부혁 기자chris@fortunekorea.co.kr 사진표기식

Q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이본 쉬나드가 내린 최고의 결정은 뭘까요?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처음 등반장비를 다루는 사업(Chouinard Equipment·1965년)을 하다 의류 사업(Patagonia·1973년)으로 확장하기로 한 결정이고 두 번째는 지구를 위한 1%(1% For The Planet)를 시작하기로 한 결정입니다.
특히 두 번째 결정은, 환경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을 단순한 자선행위로 보았던 기존의 인식을 ‘지구 환경을 위해 내는 기업의 세금’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에 아주 큰 의미가 있어요. (※1% For The Planet은 2002년 파타고니아가 설립한 비영리단체로, 파타고니아 전체 매출의 1%를 기부해 환경단체를 돕는다.)
Q 환경을 중시하는 기업활동 그리고 이와 관련한 캠페인과 제품들까지. 기존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외롭다거나 두렵진 않았나요?
결코 두렵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룰을 깨트리고 만드는 것은 좋아하긴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요. 제가 무언가를 배우는 방식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한 발짝 내딛고 기분이 좋으면 또 한 발짝 내딛고 기분이 나쁘면 뒤로 물러나는 거예요. 이건 제가 스포츠를 배우는 방식과도 비슷한데, 클라이머들은 여러 차례의 시도와 경험을 통해, 자신이 오를 수 있는 등반코스의 난이도를 잘 알고 있어요. 가령 스키를 배운다고 하면 일단 해보는 거예요. 괜찮으면 더 해보고, 별로 안 맞는 거 같으면 그만두면 그 뿐이에요.
그런데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면 위험이 없다고 판단될 때까지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누군가에게 선점의 기회를 줘버리고 말죠. 결국 2등이 돼 1등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스포츠든 비즈니스든 일단은 그냥 뛰어드는 게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마인드셋을 가지면 두려울 게 별로 없어요.
Q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피로감을 갖는 것 같습니다. 혹은 전쟁이나 경제위기 등의 다른 이슈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안타깝게 생각해요. 사실 기후위기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 중국, 인도, 유럽 등 모든 나라가 정부차원에서 협력해야 하는데 여기에 큰 기대를 걸긴 어려워요. 각종 정치적, 외교적 이해관계 때문이겠죠. 저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혹은 정치인이 옳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아요.
정부가 아니라 시장의 힘을 믿어야 하죠. 여기서 시장의 힘이란 결국 많은 사람들의 공감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요구를 말하는데,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기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 생태계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던 시기. 그때로 돌아간다면 관심을 가지겠죠. 결국, 우리가 원시시대처럼 인간과 자연의 직접적인 관계를 깨닫고 인정하기 전까지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Q 파타고니아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어떻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나요?
매우 실질적인 답변이 될 것 같은데,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서 우리는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규모의 금액을 환경을 위해 쓸 수 있게 됐어요. 심플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아주 명확한 답변이 될 것 같네요. 지난 1년 동안 환경에 기부한 금액이 6000만 달러가 넘습니다. 과거 수년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단체를 하나 더 만들 생각이에요.

기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 생태계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던 시기. 그때로 돌아간다면 관심을 가지겠죠. 그전까지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Q 의류회사 파타고니아가 식품사업을 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앞서 얘기한 것처럼 파타고니아가 100년, 200년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업의 다각화가 반드시 필요해요. 의류 시장, 스포츠 시장 등 모든 시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에요. 예를 들어 20~30년 후에는 스키 타는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 않을 수도 있어요. 기후위기로 설산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고 스키 장비와 의류가 너무 비싸 구매가 어려울 수도 있죠.
하지만 북한이 핵을 터뜨리고 세계대전이 일어나도 사람은 먹어야 해요. 그래서 식품사업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죠.
둘째, 책임감 있는 식품을 만들고 싶어요. 파타고니아가 의류 사업을 통해 지구와 환경에 기여하듯, 식품 사업을 통해서도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예를 들어 곡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기존보다 물을 덜 사용하고 토양에 환경적으로 이로운 방식을 도모할 수도 있고요. 생태계를 위협하는 어종을 먹거리로 삼는다든지, 여러가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적용할 수 있어요.
Q 파타고니아의 가장 위대한 혁신 사례는 뭔가요?
지금 하나를 꼽자면 캐필린. 아마 파타고니아 제품을 경험한 고객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거예요. 일종의 심지가 있는 섬유라고 할 수 있는데, 땀을 정말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기능성 소재예요. 캐필린은 파타고니아가 의류산업에 큰 공헌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혁신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캐필린(Capilene)은 파타고니아 베이스 레이어 라인의 시초가 된 섬유제품이다.1984년 이본 쉬나드가 스포츠용품 박람회 참가 중 축구복에서 땀을 잘 흡수하는 폴리에스터 원단의 특징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피부에 가장 안쪽에 닿는 베이스 레이어 소재로 적합하다는 생각에 탄생했다. 파타고니아는 캐필린을 통해 아웃도어 활동에 있어 필수요소로 자리잡은 ‘겹쳐 입기(레이어링)’의 개념을 고안, 대중화에 기여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와 기능성에 초점을 두고 개발되면서 지난 40여 년 동안 꾸준한 개선 과정을 거쳐 현재 더욱 강화된 흡수성과 방취성, 통기성, 건조성을 고루 갖췄다. 덕분에매년 많은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파타고니아의 아이코닉한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Q 등반가, 환경운동가, 기업가 중 이본 쉬나드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제가 스포츠를 정말 좋아하긴 하는데, 쉽게 질리는 성격이라 끈덕지게 해 본 종목은 등반인 것 같아요. 빙벽 등반부터 크랙 등반, 거벽 등반, 히말라야 등반까지.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스포츠는 빙벽 등반인 것 같아요. 그래서 등반가라는 단어로 불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제 인생에서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환경을 위해 지금껏 해온 일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60년대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왔고 당시 등산을 즐기며 등산로도 개척하셨어요. 그 당시 한국에서 겪었던 그런 경험들이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요.
한국에 머무는 1년 동안 100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했고 자동차 정비를 공부했기 때문에, 항상 지식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주한미군으로 파견되긴 했지만 전쟁 상황은 아니었으니 시간이 많았고, 그래서 100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바로 제 인생에서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인연이 없었던 철학, 문학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Q 한국에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언제인지 기억하나요?
80년대에 갔던 게 마지막인 것 같아요. 내년엔 한국에 한번 가보려고 합니다. 직원들이 하는 일이 자랑스럽고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Q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희를 배우려고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요. 그러기 위해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니까요. 저 역시 책임감 있는 기업이 되고 수익을 내면 다른 기업들도 따라올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단순히 희망사항이었어요. 옳은 일을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하지 않는 방식을 시도해보세요.

옳은 일을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하지 않는 방식을 시도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