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셔터스톡]](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10/50316_43945_166.jpg)
얼마 전까지 스타트업들은 심각한 투자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2021년 17조 8481억 원에 달했던 벤처투자펀드 결성 금액이 급감해 지난해에는 10조 5550억 원까지 쪼그라든 영향이다.
돈줄이 마르면서 힘들어진 건 벤처캐피털(VC)들도 마찬가지였다. 펀드 규모가 축소되거나 결성에 실패하는 일이 잦았다. 그 결과 투자 수수료를 수취하지 못해 운영이 마비되는 VC도 속출했다.
벤처투자업계의 봄은 지난 6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찾아왔다. 벤처투자 활성화를 약속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덕분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청년 창업자들과의 미팅 자리에서 “2029년까지 벤처투자펀드 결성 금액을 40조 원 수준으로 키우겠다”며 의지를 재확인했다. 지난해 대비 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10월 현재 강원도 등 지방 자치단체에서도 벤처펀드 출자사업을 본격화하는 등 봄기운이 확산하고 있다. 운용사 모집·선정과 자금 집행까지의 시차를 고려하면 본격적인 온기는 내년부터 돌 듯하지만, 봄 내음만으로도 한시름이 놓인다.
이재명 정부의 모험자본 확대 기조는 벤처투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모펀드(PEF) 출자액도 2029년까지 20조 원 중반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PEF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고무적이나, 지난해 출자액 약 19조 2000억 원 대비 6.7%에 불과한 증가율이나 전체 규모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사모펀드 운용사 역할이 그림자 은행으로 확장되는 걸 고려하면 더 그렇다.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최근 크레딧펀드 운용을 확대하며 다른 금융기관이 돌보지 못하는 틈새영역을 메꾸고 있다.
크레딧펀드는 사모펀드 운용사가 기업이나 기관에 직접 신용을 제공하는 펀드이다. 은행·증권사 등 전통적인 대출 기관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기자본비율 등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위축되자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기능을 확대하며 활성화했다.
이 틈새영역에는 스타트업 자금 조달도 포함된다.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재무가 부실하고 담보 잡힐 실물 자산이 없어 기존 대출 기관에서는 자금 융통이 쉽지 않다. 새롭게 재무적 투자자를 유치하는 방법이 있으나, 이는 기업 가치 재조정이 필요해 (기존 투자자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워) 역시 쉽지 않다.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크레딧펀드는 이럴 때 역할을 한다. 지난 2022년 마이리얼트립이 발행한 BW를 VIG파트너스의 크레딧 투자부문이 인수해 500억 원 유동성을 공급한 게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은 일찍부터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인지했다. 지난해에는 크레딧·디스트레스드 부문에 3500억 원을 출자했다. 디스트레스드 펀드는 부실자산 인수 전문 펀드로, 산업구조 재편과 시장 효율성 제고에 특화한 사모펀드 운용사들에 안성맞춤이다.
이렇듯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생각보다 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VC가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을 끌어올리는 마중물이라면, PEF는 뒷문을 책임지는 문지기이다. 연기금 및 공제회 투자 수익률 제고를 통해 국민의 노후를 든든히 한다.
그럼에도 현재 VC와 사모펀드 운용사분위기는 정반대이다. 봄 기운이확산하길기다리는 VC들과 달리사모펀드 운용사들은 ‘겨울이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부정적 기류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서이다. 현재까지는 비교적 합리적인 수준의 교감이 이뤄지는 듯하나, 내년 지방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인기영합적 법안이 발의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조금 더 스마트해지고 조금 더 욕심낼 필요가 있다. 앞서 국민연금이 제시해 놓은 길을 따라, 또 정부 정책 어젠다를 공유하는 LP들을 통해 사모펀드 운용사들을 훨씬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터이다.
사모펀드 운용사들 역시 의욕이 충만하다. 커진 덩치만큼이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이 커지고 있다. ‘소수 운용사 일탈이 전체 운용사 문제로 비화했다’는 초기 불만을 넘어서 현재는 ‘업계 자정작용이 부족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이제 이들도 양지 한편에서 봄날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가 지혜롭게 끌어주기만 하면 된다.
/ 슬롯 꽁 머니 김타영 기자 young@fortunekore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