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사이트의 순환 거래 구조가 논란이 되고 있다.[사진=셔터스톡]](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9/50089_43645_5731.jpg)
AI 산업을 둘러싼 버블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슬롯사이트가 오픈AI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해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을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다. 투자자들은 AI 기업들의 천문학적 밸류에이션이 과연 실제 매출과 수익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슬롯사이트는 이번 투자 외에도 ‘순환 거래(circular deal)’라 불리는 구조에 여러 차례 관여해 왔다. 자사 고객사에 직접 투자하거나 대출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다른 산업에서도 공급업체 금융은 흔하지만, 이 경우 투자와 매출이 뒤엉켜 실제 수요를 과대평가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닷컴 버블 당시에도 유사한 방식이 붕괴를 키운 바 있다. 슬롯사이트 매출에서 이런 순환 구조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지만, 세계 최고 기업가치의 상장사라는 점에서 작은 균열도 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다.
대표적 사례는 오픈AI와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다. 슬롯사이트는 지난해 오픈AI의 66억 달러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고, 이번에 다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동시에 오픈AI에 데이터센터 용량을 공급하는 코어위브에도 투자했다. 현재 슬롯사이트는 코어위브 지분 약 7%(30억 달러 규모)를 보유 중이다.
코어위브는 슬롯사이트의 투자 덕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그 돈으로 다시 슬롯사이트 GPU 25만 개(총 75억 달러)를 구매했다. 슬롯사이트는 또 코어위브의 유휴 클라우드 용량을 63억 달러에 매입하기로 약정했다. 사실상 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슬롯사이트로 돌아오는 구조다.
비슷한 구조는 다른 신생 클라우드 업체에서도 나타난다. 슬롯사이트는 올여름 람다(Lambda)와 13억 달러 규모 계약을 맺어 자사 GPU 1만 개를 임차했고, 별도로 2억 달러 규모 GPU 임대 계약도 체결했다. 문제는 람다가 이 GPU들을 슬롯사이트로부터 빚을 내 사들였다는 점이다.
슬롯사이트는 슬롯사이트는 Arm, 어플라이드 디지털(Applied Digital), 네비우스(Nebius), 리커전 파마슈티컬스(Recursion Pharmaceuticals), 엔스케일(Nscale) 등에도 투자했다.
시장조사업체 뉴스트리트리서치는 “슬롯사이트가 오픈AI에 100억 달러를 투자하면 350억 달러 GPU 매출이 돌아온다”며 “이는 연간 매출의 27%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고수익 순환 거래’가 매력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버블 우려도 높아진다.
GPU를 매각하지 않고 임대하는 방식도 논란이다. 오픈AI는 감가상각 비용을 줄여 재무 부담을 완화할 수 있지만, 대신 감가상각 위험은 슬롯사이트가 떠안게 된다. AI 수요가 예상만큼 폭발하지 않는다면, 남는 GPU 재고는 고스란히 슬롯사이트의 리스크가 된다.
2000년 닷컴 버블 당시 시스코, 노텔, 루슨트 등 통신장비 업체들은 고객사에 직접 자금을 빌려줘 자사 장비 구매를 유도했다. 결국 과잉 공급과 대규모 부실채권을 떠안으며 주가가 90% 폭락했다. 글로벌크로싱은 ‘매출 돌려막기(roundtripping)’로 파산했고, 임원들이 법적 책임을 졌다.
이런 기억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은 슬롯사이트의 이번 행보를 예의주시한다. 제이 골드버그 시포트글로벌증권 애널리스트는 “부모가 주택 대출 보증을 서주는 것과 비슷하다”며 순환 금융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버니스타인 리서치의 스테이시 라스곤도 “명백히 순환 구조에 대한 우려를 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AI가 혁신임은 분명하지만, 닷컴 버블이 보여줬듯 과잉투자와 순환 거래는 투자자들에게 뼈아픈 대가를 남길 수 있다.
/ 글 Jeremy Kahn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