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창문이자 도끼이며 거울입니다."
'음식이 곧 보약'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진리를 가슴에 새기고 환자를 치료하는 김형찬 다연한의원장은 책을 이렇게 정의했다.
김 원장은 "책을 읽으면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고, 안락한 현재에 눌러앉으려는 나를 자각하고 벗어나게 해 준다"며 "더불어 책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나를 비춰보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책은 현재의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도록 해 주는 선물이라는 것. 그는 이어 "그동안 글을 쓰고 내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있었던 것 모두 지금까지 만났던 책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요리와 관련된 책을 두 권이나 쓴 한의사다. 첫 책인 《텃밭 속에 숨은 약초》를 시작으로 일상에서 먹는 음식이 곧 보약이라는 컨셉을 담아 약선음식 전문가 고은정 씨와 함께 쓴 《시의적절 약선음식》 등이 있다. 한의원을 소개하는 데 집중하는 마케팅용 저서와는 결이 다르다.
요리와 식재료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양약이든 한약이든 모든 약에는 독이 있다"면서 "약은 약을 먹지 않기 위해 먹는 것인데, 요즈음은 약을 먹는게 목적이 되어버렸다"고 우려했했다. 그는 이어 "약이 내 건강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으며, 영양보충제가 식사를 대신할 수 없다"며 "다만 우리가 직방으로 효과를 얻으려는 욕심이 앞서다 보니 중요한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원장은 저자로 만족하지 않고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직접 요리를 해가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찾아내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전라북도 완주군이 고향인데, 풍부한 식재료는 물론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뛰어났다. 누구든 엄마가 만들어준 집 밥이 약선음식"이라며 “식재료의 치료 효능을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직접 만들어보면서 맛있는 음식이 곧 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요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에는 남원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 농부를 대상으로 식재료의 한의학적인 이론을 강의하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몸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 동양철학의 음양오행"이라면서 "무엇을 먹고 어떠한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각자의 몸 상태와 흐름을 파악하고 치료법을 연구하는 학문이 한의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각자에게 맞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은 사람을 읽는 법이자 치유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덧붙였다.
'요리하는 한의사'김형찬 원장에게 내 인생의 책과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소개받았다.
■ 꼬마 기관사 짐크노프┃미하엘 엔데 지음┃김인순 번역┃주니어김영사 펴냄
어린 시절 책은 참 귀한 것이었는데, 10살때 생일선물로 받은 이 책은 나에게 환상적인 경험을 안겨주었다. 겨울 내내 너무 많이 읽어서 표지가 낡아 비닐로 커버를 씌운 기억이 난다. 책 읽기의 즐거움으로 나를 이끌어 준 책이다. 정작 작가의 대표작인 <모모는 한참 뒤에 읽었다.
■ 대지┃펄 벅 지음┃안정효 번역┃문예출판사 펴냄
중학교 1학년 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대지는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농사짓는 부모님과 이웃을 만나게 해 주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문고판은 축약본이었다. 커서 완역본을 읽었을 때 문고판으로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되살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같은 책이라도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최순우 지음┃학고재 펴냄
20대 내 인생의 책이자 미학에 눈을 뜨게 해 준 책이다. 한국의 미를 바라보는 눈이 생기게 되었고 더불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부석사에 들러 기대를 하며 배흘림기둥을 쓰다듬어보았지만,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감흥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아는 힘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온 인생의 힘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고은정 지음┃한살림 펴냄
"밥은 먹고 다니냐?"자취생활을 할 때 어머니께서 늘 하던 말씀이다. 이 한마디에는 걱정과 안쓰러움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어른들의 사랑 표현 방식이 아닐까. 책에 담긴 글을 읽고 그 안에 담긴 마음과 음식을 먹다 보면 무심한 듯 안부를 묻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이 새록새록 되살아 난다. 맛있는 밥 한끼의 레시피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최성각 지음┃동녁 펴냄
공자가 스스로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만큼 책에 진심인 사람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삶의 모든 순간을 책과 함께 한 것은 아닐까 라는 궁금증이 들 정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걱정과 연민 그리고 사람에 대한 희망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책에 진심이 한 사람이 정제된 언어로 풀어낸 많은 책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 신의 호텔┃빅토리아 스위트 지음┃김성훈 번역┃와이즈베리 펴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빈민자를 위한 병원 라구나 혼다를 소개하는 책이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매일 만나면서 ‘좋은 의료’란 뭘까 늘 고민하는 의사로서 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뿌리가 되는 삶을 치유할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환자와 의사가 병이 아닌 건강한 삶을 매개로 만나는 치유의 공간을 만드는 게 개인적인 꿈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 의료의 목표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병에 걸린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란 사실을 느낄 수 있다.
■ 시간의 지도: 빅 히스토리 입문┃데이비드 크리스천 지음┃이근영 번역┃심산
기후위기, 식량문제, 방사능 오염수의 방류 그리고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전쟁과 같은 문제에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지구인의 삶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경험했다. 지금처럼 ‘인류’란 개념이 절실하게 필요한 적은 없었다. 바벨탑이 무너지면서 다른 언어와 국가로 이제까지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인류란 개념 없이는 존재가 어려울 듯 하다. 이 책은 우리를 ‘인류’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줄 빅 히스토리를 정리해 두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 이 기사는 <무료 슬롯 사이트 6월호에 실렸습니다.
/ 장선화 선임기자 report@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