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듣는 과정이다. 짧은 대화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독서는 이를 가능하게 해 준다. 책을 읽는 이유다.”
언어학자 신지영 고려대 교수가 정의한 독서다. 최근 문제해결능력으로 개념이 진화하고 있는 리터러시 강화를 위해 독서의 필요성이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지만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성인이 절반 이상이다. 신 교수는 “독서만큼 양극화가 심각한 분야도 드물다. 읽는 사람은 많이 읽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책을 손에서 놓고 있다”면서 “다음 세대 걱정에 앞서 우리가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독서 습관을 강조하는 그는 “도입부의 지루함을 견디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한다.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게 된다”고 했다. 스스로 ‘읽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신 교수는 ‘내 인생의 책’과 더불어 중장년층에게 권하고 싶은 책 다섯 권을 골랐다.
주해훈민정음 | 김민수 편저 | 통문관 펴냄
1957년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고3때 운명처럼 만났다. 나를 국어학자로 이끌었던 책이기도 하다.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 이과 성향의 학생이었지만 정치인이 되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문과를 선택했다. 고문(古文)을 배우면서 언어를 조각내 그 의미를 파악하는 형태소 분석의 세계를 알게 되면서 언어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음성학의 세계로 이끈 이 책 덕분에 영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고, 박사 논문 헌사에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에게’라고 쓰기도 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 | 파커 J. 파머 지음 | 한문화 펴냄
‘나는 과연 좋은 교수인가?’ 교수가 된 후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많아 늘 질문을 달고 살았던 탓에 토론식 수업에 목말랐다. 막상 교수가 되니 학생들은 질문을 하지 않았고, 또 교수가 질문하면 학생들이 힘들어 했다. ‘교수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사람인가?’를 고민하던 차에 만난 책이다. ‘강의실은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공포의 공간’이라는 저자의 말에 무릎을 탁 쳤다. 교수는 자신의 공포 탓에 학생의 공포를 보지 못한다는 대목을 읽고는 학생들의 공포에 공감하게 되었다. 학생의 성장을 위해 옳다고 판단되는 일은 당장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용기를 내어 실천해야 한다는 믿음을 준 책이다.
행복의 조건 | 조지 베일런트 지음 | 프런티어 펴냄
40대 중반 행복한 노년을 준비하던 내게 방향을 보여준 책이다. 1930년대 하버드대 학생, 빈민층 중학생, IQ가 높은 여자 중학생 등 814명을 대상으로 70여 년간 종단적 연구 결과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 법칙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실증적 해답을 주고 있다. 행복한 노년의 조건은 배움의 자세 유지, 유머, 따뜻한 사회적 관계, 가족과의 친밀감 등이 공통점이었다. 행복하게 성장하며 삶을 마감할 수 있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책이다.
행복의 정복 | 버트런드 러셀 지음 | 사회평론 펴냄
수학자 겸 철학자인 저자가 권태롭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넘어 어떻게 행복을 정복했는지를 분석적으로 알려준다. 저자는 수학자답게 불행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 불행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논리정연하게 알려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58세의 러셀이 20대 젊은이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스무 살 때는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은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 쉰여덟이 된 나로서는 그런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생각은 인생이라는 자본을 금전적인 자본처럼 소비하는 것으로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 삶은 생각보다 길며 하루하루 성장하면서 새로운 나를 만나는 즐거움이 숨어 있으니 말이다.
동경대전(총 2권) | 김용옥 지음 | 통나무 펴냄
동학을 새롭게 발견한 책이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는 서학의 위험성을 말한다. 서학은 군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지만, 다시 하나님에게 복속시킨다는 것.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근간인 인내천 사상은 그렇게 태어났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어린이도 간과하지 않았다는 점은 놀라웠다. 한국 최초의 종합월간지 개벽을 공동 창간한 김기전,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보성전문 교장 박승빈 등을 책에서 만났다. 한글이라는 쉬운 문자로 인한 정보 접근성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민주주의 발전의 사상적 근간이 동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장선화 선임기자 report@fortunekorea.co.kr 사진 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