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9년간(16~18대)의 대한온라인 슬롯협회장 임기를 마감한 허광수(75)회장이 퇴임과 때맞춰60년의 온라인 슬롯인생을 돌아본‘온라인 슬롯와 함께 추억을 담다’라는 제목의 사진첩을 발간했다. 210여장의 소중한 사진자료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눈길을 끈다.
허 회장은“선친의 길을 따라 온라인 슬롯와 함께 한 지난 시간을 사진첩에 담았다. 지나온 시간은 추억이 되었지만 온라인 슬롯를 지극히 사랑한 저의 마음이 마중물이 되어 대한민국 온라인 슬롯가 더욱 발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면서“오늘이 있기까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대한온라인 슬롯협회장 임기를 마친 소감은.
1992년 3월 처음 협회 이사직을 맡았으니 협회와의 인연은 거의30년이다. 2004년 1월까지12년의 이사직을 그쳐2004년부터2012년 1월까지8년의 부회장직을 역임했다. 이어2012년부터 제16대 협회장을 맡았다. 선친이 협회장을 그만 둔1985년 2월 이후27년만의 일이다. 이후17, 18대 회장까지 연임했으니 협회장직만9년 등 오랜 시간을 한국온라인 슬롯 현장에서 동고동락했다. 대과없이 마무리해 기쁘게 생각한다.
협회장 재임기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많은 기억이 있지만 올림픽에서112년 만에 온라인 슬롯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지난2016년 리우올림픽 온라인 슬롯 여자부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다. 협회가 다른 종목보다 많은 포상금(금메달3억원, 은메달1억5,000만원, 동메달1억원)을 내거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했는데 성과가 있어 보람과 감동을 느꼈다.
온라인 슬롯역사가 담긴 사진첩을 내게 된 계기는.
선친이 돌아가시고 어언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벌써 내 나이70대 중반을 넘었다. 부족한 면이 있지만 지난60년의 온라인 슬롯인생을 되돌아보고 한 번쯤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또 단순히 저의 개인적인 기록이 아닌 선친의 온라인 슬롯인생도 조명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봤다. 한국온라인 슬롯의 달라진 위상변화도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온라인 슬롯와의 인연은.
초등학생 시절 연습장이 없어 서울 명륜동 집 근처 학교운동장에서 온라인 슬롯연습을 하시던 아버지의 볼보이(?)를 하면서 온라인 슬롯를 간접적으로 접하게 됐다. 온라인 슬롯채를 잡게 된 것이 중3 때였으니 벌써 구력이60년은 된 셈이다.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 구 서울CC(옛 군자리코스) 연습장에 갔다가 처음 드라이버를 쳤는데 운좋게 잘 맞았고 이를 지켜본 아버지께서 격려해준 게 시발점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아이스하키와 병행해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의 온라인 슬롯채를 물려받아 본격적인 스윙을 했다. 그리고 고려대2학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활약하다가 부상을 입은 후 온라인 슬롯에 매진했다.

아마추어 활약상은.
1969년 서울CC에서 국내 최초로 개최된 국가대항전인 아시아태평양아마추어온라인 슬롯팀선수권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이후에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유학을 다녀온 후 사업에 전념하면서5년간의 공백기를 두고1981년 인도 로얄 캘커타CC대회, 1983년 한국 남서울CC대회까지 모두3번 출전했다.
1974년 최고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대통령배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는 우승했다. 1969년 한국오픈과1984년 동해오픈 베스트 아마추어 입상 등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다 거머줬다. 아버님이 만든 남서울CC클럽챔피언도 세 차례(1978년, 1982년, 1983년) 차지했다.
온라인 슬롯실력이 뛰어난데 지금은 어떤가.
베스트 스코어는80년대 초반 남서울CC에서 기록한7언더파65타다. 나이가 들어 젊었을 때 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5오버파77타를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드라이버샷 거리도 한창 때보다 좀 줄긴 했으나 꾸준한 하체 운동과 장비의 발달로 그만하면 아직 괜찮은 편이다.
온라인 슬롯 진기록은.
홀인원은 남서울에서 두 번, 엘리시안 강촌에서 한 번 등 총 세 차례 했다. 2019년에는72타를 쳐 에이지 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선친인 고 허정구 회장은 한국 온라인 슬롯사의 개척자로 불리는데 업적을 되돌아 본다면.
선친은1968년 한국프로온라인 슬롯협회를 창설해 초대, 2대 회장을 맡아 오늘날KPGA의 기틀을 만들었으며1974년에는 온라인 슬롯장 경영인들의 모임인 현 한국온라인 슬롯장경영협회를 발족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1976년부터는 대한온라인 슬롯협회 회장을6, 7, 8대(1976.2.~1985.2.)에 걸쳐9년간 이끌었다.
한국온라인 슬롯의3대 단체 회장을 비롯해 아시아태평양온라인 슬롯연맹 회장을 역임한 선친은 한국인 최초로1983년 영국온라인 슬롯왕립협회(R&A)회원이 됐다. 1971년에는 남서울CC를 개장하기도 했다.
온라인 슬롯 실력도 만만치 않았는데1959년 서울CC에서 열린 한국아마추어선수권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했을 정도다. 1989년 74세 때72타를 쳐 에이지 슈트도 기록했다.
온라인 슬롯와 관련해 선친과의 기억나는 순간은.
1974년 한국아마추어선수권에서 내가 우승을 했을 당시 대한온라인 슬롯협회 부회장(대회 본부장)이었던 아버님이 우승컵을 시상했을 때가 기억난다. 부자가 우승컵의 시상자와 수상자로 나서는 뜻 깊은 순간이었다.
허정구배 한국아마추어온라인 슬롯대회를 조명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의미와 평가는.
한국 온라인 슬롯의 초석을 다진 선친을 기리기 위해 지난2003년 제50회 한국아마추어온라인 슬롯선수권부터 대회 타이틀에 이름을 붙여‘허정구배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로 바꿨다.
부친의 뜻을 기리는 제일 좋은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형님(허남각, 허동수)들과 상의해 대한온라인 슬롯협회에 주니어 육성기금7~8억 원을 전달한 뒤‘허정구배’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온라인 슬롯에 열정이 많았던 아버님에게 조그마한 효도를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선친에 이어 한국인2호로2003년 R&A회원이 되었다.
R&A는 약300년의 전통을 가진 온라인 슬롯 룰 개정 등의 권한을 가진 최대의 온라인 슬롯기관이다. R&A회원은 온라인 슬롯의 매너, 인격, 지식, 성품 등 모든 것들이 확실해야하며 추천이 필요하다. 한국 온라인 슬롯계의 위상을 한층 높임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동경했던 선친의 뒤를 이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의미가 크며 행운이다.
선친에 이어 대한온라인 슬롯협회장, 아시아태평양온라인 슬롯연맹, R&A회원 등에 있어 대를 잇는 특이한 이력이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기쁨보다는 존경하는 선친이 걸어왔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뜻 깊다. 자식으로서 선친이 해왔던 일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누가되지 않기 위해 책임감 또한 막중한 게 사실이다.
기업 경영인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운영 중인(주)삼양인터내셔날은 어떤 회사인가.
설립 초기 미국 유명 소비재를 국내에 수입, 유통하며 성장의 기틀을 다졌다. 스탠퍼드 유학시절 온라인 슬롯로 잘 알게 된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와 친구가 되면서 나이키OEM을 위탁받아 전 세계에서 파는 나이키 신발의80%를 한국이 만들 때도 있었다. 이후 에너지, 환경, 온라인 슬롯(핑) 등 사업 다각화와 해외시장 개척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 중이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온라인 슬롯를 통해 많이 배웠고, 과분한 사랑과 은혜를 받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체력관리를 잘해 오래 온라인 슬롯를 즐겼으면 한다. 또 꿈나무 지원과 우수선수들이 계속해서 배출돼 온라인 슬롯강국의 입지를 이어가길 희망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움이 되는 동반자가 되고 싶다.
정동철 온라인 슬롯 대기자ball@hmgp.co.kr
<프로필
1964년 경기고교 졸업
1969년 고려대학교 상대 졸업
1972년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1997년~ (주)삼양인터내셔날 회장
2006년~ 지에스아이티엠 회장
2007년~ 남서울CC회장
2003년 12월~ 영국왕립온라인 슬롯협회(R&A)회원
2007년~2013년 아시아태평양온라인 슬롯연맹 회장
2012년 1월~2021년 1월 대한온라인 슬롯협회장
입상 및 표창
1969년 한국오픈선수권 아마추어부1위
1974년 대통령배 한국아마추어선수권 우승
1984년 동해오픈선수권 아마추어부1위
1992년 성실납세의무 재무부장관 표창
1995년 여성인력고용평등 대통령 표창
2016년 대한민국체육상 대통령 표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