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TUNE GLOBAL 500 기업 가운데 4분의 1이 슬롯 잭팟지만, 한국 슬롯 잭팟는 단 한 곳. 왜일까.
김타영 기자young@fortunekorea.co.kr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사. [사진=KB국민은행]](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9/49716_43216_1018.jpg)
올해 FORTUNE GLOBAL 500에 이름을 올린 우리나라 슬롯 잭팟는 KB금융 한 곳뿐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다. KB금융은 지난해에 296위, 올해 379위에 랭크됐다.
FORTUNE GLOBAL 500에서 슬롯 잭팟들의 위세가 대단한 걸 생각하면 이는 대단히 의외의 결과이다. 올해 기준 전체 500개 기업 가운데 121개 기업이 슬롯 잭팟였다. 전체 기업의 4분의 1이 슬롯 잭팟였지만, 국내 슬롯 잭팟는 1개밖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글로벌 슬롯 잭팟들은 최근 꾸준히 FORTUNE GLOBAL 500 영토를 확장해 왔다. 2023년 101개에서 지난해 116개로, 올해 121개로 늘었다. 국내 슬롯 잭팟들이 2023년 2개에서 지난해 1개로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 韓 슬롯 잭팟 입성 ‘희소 기록’
1995년 FORTUNE GLOBAL 500이 처음 발표된 이래 국내 슬롯 잭팟 편입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95년에는 어떤 슬롯 잭팟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16번은 1개 업체만이 이름을 올렸다. 올해까지 총 31회 발표 가운데 절반 이상에서 1곳 이하만 이름을 올리는 데 그쳤다.
국내 슬롯 잭팟들이 FORTUNE GLOBAL 500에 가장 많은 이름을 올린 건 지난 2008년이다. 삼성생명(247위)과 신한금융(278위), 우리금융(279위), KB금융(461위) 등 4개사가 랭크됐다. 당시 가장 순위가 낮았던 KB금융이 지난해와 올해 유일하게 FORTUNE GLOBAL 500에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끈다.
현재까지 FORTUNE GLOBAL 500에 소개된 국내 슬롯 잭팟는 총 5개이다. 위의 4개사 외에 교보생명이 1997년(449위), 1998년(466위), 2000년(450위)에 이름을 올렸다. 신한금융은 2008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우리금융은 2008년과 2012년 각각 279위, 449위에 랭크됐다.
![삼성생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슬롯 잭팟 GLOBAL 500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사진=셔터스톡]](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9/49716_43217_1144.png)
◆ 최다 출석 기업 삼성생명
FORTUNE GLOBAL 500에 가장 빈번히 이름을 올린 국내 슬롯 잭팟는 삼성생명이다. 1996년 데뷔 이래 2023년까지 총 27번 이름을 올렸다. 2012년을 제외하곤 2023년까지 꾸준히 출석 도장을 찍었다.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곳 역시 삼성생명이다. 1998년 180위에 랭크됐다. 이후엔 단 한 번도 100위권에 이름을 올린 국내 슬롯 잭팟가 없었다.
삼성생명은 2008년까지 200위권을 유지하다 2009년부터 300위권으로 떨어졌다. 2012년엔 500위 밖으로 밀려났다가 이듬해 복귀, 400위권에서 오르내렸다. 2023년 496위를 마지막으로 지난해와 올해는 순위권 입성에 실패했다.
◆ KB금융, 8년 연속 출근 도장
KB금융은 삼성생명과 같이 비교적 자주 FORTUNE GLOBAL 500에 얼굴을 비친 슬롯 잭팟이다. 올해 포함 총 13회에 걸쳐 이름을 올렸다. 신한금융, 우리금융 등 경쟁사들이 단발성 혹은 간헐적 입성에 그친 것과 비교된다.
KB금융은 2003년 330위 성적으로 처음 FORTUNE GLOBAL 500에 데뷔했다. 이후 2005년을 제외하고 2008년까지 5회에 걸쳐 이름을 올렸으나, 이후 9년 동안 순위권 밖을 맴돌다 2018년 재입성했다. 2018년부터는 8회 연속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최근 연속 기록은 201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사상 최대 실적 경신 영향이 컸다. 2017년 250억 5200만 달러였던 KB금융 매출액은 2023년 502억 2800만 달러로 2배 이상 성장해 2024년(직전년 실적으로 평가하므로) 순위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200위권(296위)에 이름을 올렸다.

◆ 실적은 호조… 글로벌엔 못 미쳐
랭크된 기업 숫자나 순위 변동만 보면 국내 슬롯 잭팟 실적이 제자리걸음하거나 뒷걸음친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KB금융은 수년째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고, 이는 경쟁사인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우리 슬롯 잭팟들이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FORTUNE GLOBAL 500의 비교 대상이 글로벌 대기업들인 것을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올해 FORTUNE GLOBAL 500에 랭크된 121개 슬롯 잭팟 가운데 매출이 역성장한 곳은 27개였다. 바꿔 말하면 94개 기업은 성장했다는 말이다. △JP모건 체이스(19위)나 △뱅크 오브 아메리카(34위) △중국생명보험(45위) △골드만삭스(70위) △스테이트 팜 인슈어런스(77위) △프레디 맥(80위) △소시에테 제네랄(89위) △모건 스탠리(93위) 등은 매출 규모가 1000억 달러가 넘는 초대형 슬롯 잭팟임에도 전년비 10%가 넘는 성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포춘이 밝힌 순위가 급상승한 20개 기업 가운데 5곳이 슬롯 잭팟인 점 역시 궤를 같이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작은 내수시장, 해외 개척 절실
“내수용인데 당연한 거 아닌가요.” 금융권 한 관계자가 ‘FORTUNE GLOBAL 500에 국내 슬롯 잭팟 입성이 드문 이유’ 질문을 받고 내놓은 냉소적인 답변이다. 이자수익과 수수료수익 등 우리 슬롯 잭팟들이 일으키는 주요 매출이 해외보다 국내 시장에 편중돼 있어 시장 규모 면에서 밀린다는 지적이다.
한편에서는 “순위에 오른 슬롯 잭팟들이 모두 글로벌 플레이어는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중국생명보험(China Life Insurance)이나 일본우정공사(Japan Post Holdings) 등이 그렇다. 이들은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내수시장 위주의 슬롯 잭팟들이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시장 자체가 국내와 비교할 수 없이 커 비교 대상으로 삼기엔 부적절한 면이 있다. 한국 GDP는 글로벌 전체에서 2% 미만으로 내수시장 역시 작기 때문이다. 이는 앞선 시장 규모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국내 슬롯 잭팟들도 “‘작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이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한다.

◆ 해외 진출 오래지만 성과 제한적
생각 외로 국내 슬롯 잭팟들의 해외시장 진출 역사는 꽤 오래됐다. 1960년대 슬롯 잭팟 맏형격인 은행들이 일본, 동남아, 미국 등에 지점을 열었고, 1970년대엔 두 번째로 덩치가 큰 보험사들이 같은 경로를 따라 뒤를 이었다. 1980년대엔 증권사들이 선진시장 위주로 사무소를 개소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다만 해외시장 개척 역사에 비해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한 편이다. 최근 몇 년간 해외 실적이 꾸준히 우상향을 그렸음에도 전체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골드만삭스나 씨티은행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전체 순이익의 절반가량을 해외에서 올리는 것과 비교된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배경을 설명했다. “해외시장에 나가보면 저희는 글로벌 슬롯 잭팟들과 토종업체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입니다. 가령, 동남아시장이라고 하면 선진금융 기법을 체화한 저희가 토종업체보다 경쟁 우위에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해당 지역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금융 데이터와 노하우를 그들이 훨씬 많이 들고 있어서 반대입니다. 글로벌 슬롯 잭팟들은 워낙 체급이 커 경쟁에 어려움이 있고요. 해외시장 확장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보니 실적 전환에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 규제 탓? 슬롯 잭팟 탓? 떠넘기기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규제 우선’ 스탠스가 국내 슬롯 잭팟 성장을 가로막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슬롯 잭팟들이 엄격한 금융당국 성향에 맞추다 보니 보수적인 경영 문화가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모험적인 글로벌 진출이나 대규모 투자은행 업무보다 리테일·기업금융을 더 선호하게 됐고, 그 결과 FORTUNE GLOBAL 500 입성에 필요한 ‘매출 규모’가 부족해졌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강변했다. “저희 역시 국내 슬롯 잭팟들의 해외 진출을 위해 ‘해외법인 기업신용공여 개선’ 같은 제도적 뒷받침을 해왔고, 또 장려했습니다. 슬롯 잭팟들의 보신주의와 소극적 투자행태는 오히려 저희 쪽에서 지양하라고 주문한 내용들이에요. ‘생산적 금융’ 정책 기조에 발맞춰 앞으로도 관련 활동을 강화해 나갈 생각입니다.”
슬롯 잭팟들과 금융당국의 생각이 엇갈리는 가운데 학계에서는 슬롯 잭팟 의견에 조금 더 힘을 싣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금융 경쟁력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뜯어보면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부분들이 있거든요. 카드 등이 그렇죠. 하지만 이들 슬롯 잭팟가 해외에 진출하는 데 금융당국이 도움이 됐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금산분리부터 시작해서 각종 규제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죠. 국내 슬롯 잭팟들의 해외 진출을 위해 금융당국에서 뭔가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 상당히 가려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