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에 오른 기업 대부분은 사상 최대 매출과 이익을 거뒀지만 34개 기업은 총 168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분야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기술 전환과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다린기자 quill@fortunekorea.co.kr

2025 FORTUNE GLOBAL 500에 속한 대부분의 기업은 막대한 매출과 이익을 기록했다. 이유는 여럿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흔들렸던 글로벌 공급망이 2024~2025년에 거의 정상화됐다. 반도체, 물류, 자동차 등 공급 차질로 직격탄을 맞았던 산업이 생산을 정상 궤도에 올리면서 매출이 크게 반등했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률이 진정되면서 소비 심리가 살아난 점도 주효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생활필수품·소매·헬스케어 부문 지출이 늘었고, 이는 관련 대기업의 매출 호조로 이어졌다.

그러나 상위 500대 기업 중 34곳은 여전히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의 총손실 규모만 1685억 달러에 달했다. 흑자 행진 속에서 이들의 부진은 더욱 뚜렷하게 대비됐다.

가장 큰 규모의 적자를 낸 기업은 멕시코 국영 석유사 페멕스(Pemex)였다. 국제 유가 변동성과 노후 정유 시설 탓에 무려 426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 멕시코 정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악화했다.

인텔(Intel)은 두 번째로 적자 규모가 컸다. 엔비디아·AMD 경쟁에서 밀리며 AI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빼앗긴 끝에 187억 달러 손실을 봤다. 기술 전환 비용과 구조조정 부담까지 겹쳤다.

항공기 인도 지연과 안전성 논란 여파로 118억 달러 적자를 기록한 보잉도 눈에 띈다. 2년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한때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던 보잉은 신뢰 회복에 실패하며 구조적 위기를 드러냈다. 미디어 공룡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 역시 113억 달러 손실을 내며 2년 연속 적자에 빠졌다. 스트리밍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광고 매출이 둔화된 탓이다. 미국 약국 체인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Walgreens Boots Alliance)도 오프라인 구조조정 비용과 의료 서비스 확장 부담으로 86억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이들 적자 기업은 업종이 제각각이지만, 적자를 낸 맥락은 비슷하다. 디지털 전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기업이라는 점이다. 에너지·부동산·리테일 같은 전통 산업 기업은 고금리와 수요 둔화에 휘청였고, 반도체·항공 같은 제조 기업들은 기술 혁신과 품질 관리 실패가 직격탄이 됐다. 미디어와 유통 업종은 디지털 전환에 늦거나, 전환 과정에서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했다.

중국의 부동산·인프라 기업들의 부진도 두드러졌다. 차이나반커(China Vanke)와 컨트리 가든(Country Garden)은 각각 68억 달러, 45억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은 현재 장기 침체에 빠진 상태다.

그린랜드 홀딩스(Greenland Holding Group) 역시 21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몇 년간 정부 규제와 주택 구매 심리 악화로 여러 대형 부동산업체에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했다. 중국 당국은 부동산 시장 부양을 위해 일련의 조치를 취했지만, 아직까지 효과는 미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