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309/30685_22140_2326.png)
지난해 8월 31일 발간된 한국은행 보고서(‘우리나라 스태그플레이션 발생확률 추정’, 박근형, 강규호)는 “GDP 성장률 전년 동기비 1% 이하와 소비자물가 상승률 4% 이상, 또는 2분기 연속 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과 물가상승률 4% 이상”인 경제 상황을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고물가∙경기침체)국면이라고 규정했다. 이 내용에 부합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난 대표적 시기가 70년대 중반과 80년대 초에 발생한 ‘오일 쇼크’로 인해 석유와 원자재 가격 급등하면서 나타난 경제침체 국면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럽과 남미 경제에서 비슷한 모습이 재현되고있다.
당시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 유가 등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불안이 심화되는 가운데 성장둔화와 물가 상승을 동시에 겪으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부닥쳤다. 한국 경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영국은 1차 오일쇼크인 1974~1975년에 소비자 물가가 16.0~24.1%에 달했으며, GDP 성장률은 1973년 7.1%에서 1974~1975년에는 -1.4~-0.6%로 추락했다.
미국 경제도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같은 고통을 겪었다. 1차 오일쇼크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1974년과 1975년에 각각 11.0%, 9.1% 급등했고, 경제 성장률은 1974~1975년 모두 역성장을 보였다. 2차 오일쇼크 당시에는 1979년 3.2%이던 GDP 성장률이 한 해 뒤인 1980년에는 -0.2%를 기록하면서 급랭했다. 반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0%를 넘었다.
이에 ‘인플레이션 파이터’인 연준 의장 폴 볼커(1979년 8월∼1987년 8월)가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 올렸고, 덕분에1983년부터 물가상승률이 2~3% 수준으로 낮아졌다. 당연히 실업은 급증했고, 많은 기업이 도산했다. 당시 연준의 이 같은 강경책 실시는미국 경기가 그 후 40년 가까이 연평균 2%대 중반의 낮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면서 경제와 증시의 장기 호황의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최근 미국 연준도 같은 시도를 하는 것처럼보인다.
그간 기복은 있었지만 잘 버티던 세계 경제는 팬데믹 상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2022년 들어서면서 큰 시련을 맞았다.2022년 하반기나 예상했던 금리 인상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 인플레이션 때문에 같은 해 2분기부터 시작됐다. 이후 11차례 걸쳐 최근까지 5.5%로 빠르게 상승했다.
인플레이션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금리도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서로 모습을 달리하면서 경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가장 심각한 곳은 유럽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이다. 유럽중앙은행은 최근 금리를 추가로 인상하면서 내년에도 상황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고 발표했다. 앞서 언급한 한국은행 발간 보고서 기준에 따르면 EU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으로 이해된다.
한편, 만약 중국 경제가 불황을 맞는다면 디플레이션(deflation) 형태의 불황일 가능성이 크다. 디플레이션형 불황은 일본, 중국과 같이 부채의 상당부분을 국내에서 자국 통화로 조달한 국가에서 주로 발생한다. 부채 문제가 터지면 자산 강매나 채무불이행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만, 통화나 국제수지와 관련된 외환 관련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가 제로금리를 고수하고 중국 정부는 꾸준히 금리를 내리면서 향후 내수 부양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외국 자본과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인플레이션형의 불황이 발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상황에서 외국 자금이 유출되면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 만약 외화 부채 비중이 과도하게 크다면 인플레이션형 불황은 관리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다수의 나라들이 이 유형의 불황을 겪는다.
아시아 대표 경제 강국인 한국, 대만, 싱가포르는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자금이나 실물 경기 측면에서 대외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싱가포르는 물가 상승 압력이 한국과 대만보다 높은 편이다. 금리 수준은 대만이 가장 낮은 1.875%, 한국과 싱가포르는 각각 3.5%, 3.76%에 머물러 있다.
고금리 상황이 내년에도 지속된다면 가장 큰 위험은 경제 내 거품이 걷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산의 부실화이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부동산 PF 부실과 한계기업 증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경기 침체기에 어떤 한 분야에서 버블이 터진다면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지면서경제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고금리 장기화로 피로도가 누적된 경제는 거품이 터지는 순간 자칫 빠른 속도로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 슬롯 사이트 윤두영 글로벌기업연구소장 miche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