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바다주의 한 작은 법정에 ‘보수언론 제국’의 미래가 달렸다. 판결에 따라 뉴스와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미국의 정치 지형까지도 바뀔지 모른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93세의 억만장자 미디어 거물,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이 있다. 머독은 뉴스코프(월스트리트저널, 뉴욕포스트 등 소유)와 폭스 코퍼레이션(폭스 관련보도채널소유)의 창립자로, 지금은 명예회장 직에 있다. 머독은 이들 언론을 통해보수 의제를 밀어 붙이고,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에 조명을 비췄다.

머독이 사망하면 보수 미디어 제국을 누가 장악할지 오랫동안 관심이 이어졌다.

2023년 말, 머독 가문의 승계 서사시에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뉴욕타임스가 올해 초 법원 기록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머독이 수십 년 전 만든‘취소 불가능한 신탁(Irrevocable Trust)’을 수정해 "장남이자 후계자로 선택된 래클런(Lachlan)이 방대한 TV 네트워크와 신문 컬렉션을 계속 관리하도록 보장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래클런은 현재 폭스의 최고경영자이자 뉴스코프의 회장으로, 그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적 성향의 형제자매들보다 아버지와 더 가깝다고 여겨진다.

이전에는머독의 네 명의 장성한 자녀들이 부친의 제국을 균등하게 나눠 받기로 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호주와 영국의 언론사들도 포함된다.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머독의 갑작스러운 심경변화와 그에 따른 법적 다툼은 제임스(James), 엘리자베스(Elisabeth), 프루던스(Prudence) 등 다른 자녀들에게 놀라운 일이었고, 이들은 아버지의 변심에 반발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취소 불가능한 신탁은 변경이나 수정이 불가능하다. 이 법적 수단은 주로 초부유층이 유산 계획을 위해 사용하며, 일반적으로 검인과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활용된다.

그러나 올해 초 신탁이 설립된 네바다주의 한 판사는 "머독이 선의로 행동하고 상속인들의 이익만을 위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신탁을 수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가족들은 지난주 다시 법정에 섰고, 앞으로 며칠 또는 몇 주 내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정확한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법정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고, 타임스와 CNN을 포함한 언론사들이 재판 공개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포춘(Fortune)에 이것이 머독 가문이 네바다주에 신탁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주는 우호적인 신탁법으로 유명하다. 신탁에 주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고, 다른 주처럼 주 기관이나 법원에 신탁을 등록할 필요도 없어 언론과 제3자로부터 그 내용을 숨길 수 있다.

또한 이 주에서는 신탁이 최대 365년간 지속될 수 있어 상속세를 내지 않고 여러 세대에 걸쳐 자산을 물려줄 수 있다. 이른바 '사일런트 트러스트(silent trust)'도 허용되는데, 이는 수탁자가 수혜자에게 신탁의 존재를 알릴 필요가 없는 등의 이점이 있다.

가족의 사생활 보호에는 좋지만, 이로 인해 머독이 통제하는 기업들의 미래는더 불확실해진다. 사우스플로리다 소재 DGIM Law의 상속 및 승계 계획 변호사인 모니크 헤이즈(Monique Hayes)는 이 기업들이 현재 마련된 구조와 설계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헤이즈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수십 년간 신탁이 존재해 왔다면 사람들은 그 설계를 바탕으로 사업 결정과 가족 결정을 내리기 시작한다"며 그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또한 이번 법정 싸움의 결과가 일반 대중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기업들이 미국의 정치 환경과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가족 간의 의견 차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타임스에 따르면, 머독의 변호사들은 래클런에게 더 많은 통제권을 주는 것이 다른 형제자매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폭스의 정치적 성향을 완화하거나 리더십을 둘러싼 끊임없는 싸움으로 운영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헤이즈는 "이 경우는 단순한 가족 기업이 아니다. 이 제국을 통제하는 사람은 미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인의 경우 어려운 추수감사절을 보내게 될 수도 있겠지만, 선거나 관련된 여러 기업 산업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소 불가능한 신탁은 대부분 변경이 불가능하지만, 몇 가지 방법으로 변경할 수 있다. 로웬스타인 샌들러(Lowenstein Sandler)의 신탁 및 상속 변호사인 워렌 라쿠신(Warren Racusin)에 따르면, 네바다주를 포함한 일부 주에서는 모든 수혜자가 동의하면 신탁을 수정할 수 있다.

라쿠신은 머독 상황에 대해 "여기서는 분명히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신탁에는 수혜자들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가 신탁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 조항이 있는 것 같다. 누가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헤이즈는 판사가 래클런에게 더 많은 통제권을 주는 것이 다른 당사자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고 실제로 형제자매들의 최선의 이익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 변경으로 그들의 수익이 줄어든다면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 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동일한 가치의 다른 회사와 교환하는 것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왕조의 자산들은 같은 장기적 사회적, 정치적 가치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판결이 어느 쪽으로 날지는 불분명하지만, 라쿠신은 최근 몇 년간 여러 주의 법률과 법원 판결이 취소 불가능한 신탁의 수정에 더 많은 유연성을 허용해 왔다고 말했다. 또한 법원이나 주법에 의존하지 않고도 일부 변경을 허용하는 조항을 취소 불가능한 신탁에 포함시키는 것이 이제는 당연시되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아마도 변경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은 답이 '아마도' 또는 '어쩌면'일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라쿠신은 결과가 어떻든 패소한 쪽이 항소할 가능성이 높고 이 사건이 네바다 대법원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머독의 고령을 고려하면 승계 다툼이 그의 생전에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라쿠신은 "확실히 복잡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권에서 유산 계획을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 '리어왕'이다. 이 상황이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글 Alicia Adamczyk, 편집육지훈 기자 jihun.yook@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