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사회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국가가 발언권을 갖는다. 약소국이 부르짖는 정의보다 강대국의 의지가 우선되는 것이 현실이며, 힘을 갖지 못한 국가는 무대 위에 서 있지만, 대사가 주어지지 않는 초라한 역할과 같다.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주역은 강대국이다.
본래 북한과 같은 국가는 국제정치 무대에서 캐스팅조차 될 수 없는 국가이다. 그러나 북한은 핵이라는 강력한 출연권을 들이밀어 주연급 강대국들과도 눈을 맞출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왜 이미 핵을 보유한 국가는 핵이 허용되고 새로 핵을 갖고자하는 국가는 위협으로 인식되는지, 생각해보면 난해한 문제이다.
핵무기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갖기에 이미 핵을 보유한 국가는 자국 우위의 체제가 무너질 수 있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핵을 보유하지 못한 일본에 핵무기를 보유한 인접 독재 국가의 존재는 막연한 두려움이다.
대결 구도 형성하는 미국, 일본과의 협력은 불가결
현재 주연급 배우들은 앞으로 자신들을 위협할 배우의 등장을 꺼린다.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미중 충돌은 필연적 과정이다. 강대국은 이미 힘을 갖고 있기에 계속해서 더 큰 힘을 추구한다. 중국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매해 군사력도 강화해 왔다. 그러한 중국에 미국은 대결구도 형성 모드에 들어갔다. 냉전 시대의 미국은 중국을 무시하고 있었다. 무시라기보다 '이렇게 하면 좋을텐데'라며 희망적인 관측을 근거로 중국을 지켜봐 왔다고 해야 정확하다. "지켜봐 왔다"는 것은 "중국이 경제성장을 이루고 민주화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라는 뜻"이다. 그러나 민주화는 커녕 홍콩과 타이완을 봐도 점점 통제가 심해지는 모습이다.
미국은 적이 많은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만을 상대로 전술을 펼칠 수 없다. 러시아와 중동의 움직임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 진영의 전력을 어떻게 공고히 할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도 예전에는 도전자로서 국제정치 무대에서 주연급 역할을 했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연합국에 그 자리를 내어 주었고, 패전 후에는 미국의 회유에 넘어가 독립국이지만 군사력을 실질적으로 거세당한 속국적 입장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미국도 예전에 비해 힘의 쇠퇴를 보이고 있으며, 부상하는 중국에 맞대응하기엔 일본의 협력은 불가결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명확한 대중국정책
4월 17일 미일 정상회담은 중국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가 되었을까.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대면하는 정상회담이었고, 공동성명에는 '타이완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이 명기되었다는 점은 거대한 의미일 것이다. 미일협력의 확인, 게다가 타이완 정세를 주시하는 자세를 성명에 남긴 것은 중국을 향한 강한 압박일 수 밖에 없다. 일본 관점에서 볼 때, 중국 편에 서는 선택은 있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어느 쪽이 주도하는 국제사회가 좋을 것인가 일본인에게 물어본다면 대부분이 미국이라 답할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관이야말로 인류 보편적 가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국제사회를 주도한다면 일본은 당혹스러워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과 일본은 중국을 철저히 지원했으며 공장을 만들고 기술이전을 도운 역사가 있다. 이 덕분에 중국은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하게 되는데,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미국과 일본이 중국과 국교를 맺은 70년대에는 소련이 최대의 위협이었고, 소련을 견제할 수단으로 중국을 지원한 것인데, 지금은 성장을 도운 중국이 미국과 일본의 위협이 되어 버린 꼴이다. 스스로 공들여 키운 위협에 맞선 미국과 일본, 국제정치라는 무대에서 시간은 중국에 유리하게 흘러 갈 것 같다.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의사임을 알려드립니다."
김동환 박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정책과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