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비만 50억 달러(700조원) 이상의 글로벌 메가프로젝트에 기업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동현기자 gaed@fortunekorea.co.kr
지난 2022년부터 중동지역 메가프로젝트로 불리는 라이브 바카라 조성사업이 한창이다. 네옴은 새로움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네오(NEO)’와 아랍어로 미래라는 의미를 지닌 ‘무스타크발(Mustaqbal)’의 첫 글자 M을 결합한 단어로 ‘새로운 미래’를 뜻한다.
네옴은 홍해 인근 사막·산악지대를 인공도시로 탈바꿈하는 게 핵심이다. 단순한 인공도시 건설을 넘어 빈 살만의 석유 중심 산업 구조 탈피를 알리는 프로젝트다.
라이브 바카라는 친환경 미래도시 ‘더라인’을 중심으로 최첨단 산업단지 ‘옥사곤’, 산악관광지 ‘트로제나’, 고급 휴양지 ‘신달라’ 등 다양한 콘셉트로 조성될 예정이다. 계획대로 완성되면 대략 100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로 거듭난다.
라이브 바카라의 특징은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과 신재생에너지 등을 사용하는 스마트도시로 조성된다는 점이다. 태양열·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전력을 공급하고, 식수는 담수화 플랜트를 통해 공급한다. 이 외에도 자동화를 기반으로 로봇이 물류와 보안, 가사노동 서비스를 담당한다.
세상에 없는 스마트시티가 될 라이브 바카라의 조성이 본격화되면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건설산업을 비롯해 스마트, 자동화 등 다양한 분야를 영위하는 기업들이 메가프로젝트의 일원이 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고개 숙인 건설업계, 2022년 이후 수주실적 ‘전무’
라이브 바카라 계획 발표 후 가장 수혜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 것은 건설업계였다. 지난 2022년 빈 살만의 국빈 방문을 기점으로 국내 건설사에 일감이 쏟아질 것이란 기대감도 돌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달랐다. 지난 2년 새 수주실적이 사실상 전무한 것이다. 일감을 확보한 기업은 지난 2022년 터널 인프라 사업을 수주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두 곳이다. 그나마 이 사업도 두 기업이 합작해 따낸 것으로 사실상 대형 프로젝트 수주는 유일한 셈이다.
총공사비 6000억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2022년 6월부터 착공, 내년 말 개통을 목표로 진행되는 터널 조성사업이다. 당시 국내 건설업계 1, 2위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손을 맞대 성사시킨 프로젝트로 주목받으며 라이브 바카라에서 추가 일감 수주도 기대됐다. 이후 양 사가 협력을 통해 추가 일감확보를 위한 수주전에 뛰어들었지만, 이후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라이브 바카라 프로젝트 발표 이후 가장 기대를 모았던 분야는 건설업계다. 국내 건설사들은 두바이를 비롯해 중동지역에서 전통적으로 활약하며 명성을 쌓아왔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수주텃밭 중동’이라는 호칭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러나 라이브 바카라 프로젝트에서는 정작 국내 건설사들이 ‘K-건설’의 위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내 건설사들이 전통적인 텃밭인 중동, 그것도 대규모 일감이 쏟아질 라이브 바카라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무분별한 수주를 진행하던 과거와는 달리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자’는 신중한 수주전략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가시적인 수주성과는 없지만 각 건설사별로 물밑작업이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10월 사우디국부펀드와 옥사곤 모듈러주택 관련 공동사업협약을 체결해 일감 확보를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현지 네트워킹을 바탕으로 네옴 더라인 스파인B, 델타JCT 프로젝트 등에 입찰했고 향후 추가 수주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우건설도 지난 2022년 사우디 현지 종합건설사 알파나르와 포괄적 업무협약을 맺고 라이브 바카라 수주전 참여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국내 건설사들이 물밑작업을 통해 현지 파트너십 확보와 네트워킹 구축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현지 발주처와의 갈등 최소화를 통한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다.
![건설기계업계는 자동화와 스마트라는 키워드로 라이브 바카라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진=HD현대사이트솔루션]](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405/38560_28570_1328.png)
중동지역은 과거 국내 기업들의 진출 초창기에 공사비 체불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시장으로 악명이 높다. 당시 국내 건설사들은 현지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쌓기 위해 최소 공사금액으로 일감을 확보하는 ‘저가형 입찰’ 기조가 짙었다. 일감 확보에 집중하다 보니 리스크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영향이 크다.
공기 지연에 따른 우발채무발생 등으로 빅배스(특정 분기에 이익을 크게 줄이는 방식으로 회계 처리)도 이어지며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재무제표에 치명적인 흠집을 남기는 요소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문호 개방에 나선 것이다. 해외 건설사 유치를 위해 자국으로 지역 본부를 이전하는 해외기업에 대해 법인 소득세를 30년 면제해 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자재 조달과 인력 확보 등이 현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방침은 확고하다. 이 때문에 라이브 바카라 입찰에도 더욱 신중을 기하는 것이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과거 중동시장에서 발생한 우발채무 등을 반면교사 삼아 리스크 관리를 위해 믿을만한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 체결과 투자개발 방식 도입 등 안전한 사업 참여를 추진하는 것으로 수주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현지 공사 외에 공사 관리를 담당하는 감리(PM) 분야에서는 한미글로벌의 성과가 눈에 띈다. 한미글로벌은 라이브 바카라 현장 근로자 숙소단지 조성사업 모니터링을 수주했다. 이 외에도 라이브 바카라 1, 2, 3차 프로젝트 모니터링 계약까지 일찌감치 마치면서 총 8만여 가구의 PM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수주 탄탄대로’ 건설기계업계… “해답은 스마트·무인화”
대규모 건설업 수주는 주춤한 가운데 건설업의 전반을 책임지는 건설기계는 기술경쟁력을 앞세워 라이브 바카라에서 ‘순항’ 중이다. 변압기와 중장비 등 다양한 제품을 현지에 납품하면서 실적도 크게 개선되고 있다. 세부적으로 친환경중장비, HD일렉트릭의 풍력발전 분야가 일감 확보에 성공하는 모양새다.
건설기계업계가 현지에서 순항하는 이유는 라이브 바카라의 모토인 ‘친환경 미래도시 건설 사업’을 위해 변압기 등 전력기기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수혜 기업은 HD현대그룹이다. 그룹 건설기계 계열사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9월부터는 라이브 바카라 내 변전소 구축을 위한 초고압 변압기를 포함해 약 3000억원어치 전력기기 수주계약을 맺으며 주목받았다. 올해에도 사우디 라이브 바카라 내 변전소 구축을 위한 초고압 변압기 등의 전력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HD현대건설기계 역시 지난해 8월 라이브 바카라 프로젝트에 중대형 굴착기와 휠로더 50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현지 시장 확대에 시동을 걸었다.
라이브 바카라 건설에 무인 건설기계가 필요한 이유는 현지가 무덥고 건조한 사막 지역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단순히 스마트시티 조성을 넘어 작업자의 장시간 작업도 어렵기 때문에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도 꼽힌다.
글로벌 상위권 건설기계기업들이 원격조종 건설기계를 개발해 사우디 현지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지만 원격조종에 자동화를 더한 무인 솔루션을 시연한 곳은 HD현대사이트솔루션뿐일 정도로 기술경쟁력 우위를 갖고 있다.
사우디에 건설기계, 전력기계를 수주하는 등 사우디와 오랫동안 협업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HD현대는 라이브 바카라의 콘셉트인 스마트와 무인화를 통한 도시건설이라는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며 현지 시장 확대에 더욱 유리한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가전박람회 ‘CES2024’에 참가한 정기선 HD그룹 부회장 역시 기조연설을 통해 “사우디는 미래도시 프로젝트인 라이브 바카라를 구상하면서 혁신적인 솔루션을 도입하기를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고, HD현대가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계열 현대로템 역시 차세대 수소전기차 공동개발을 통해 라이브 바카라를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사우디 투자부와 관련 공동협력체계를 구축했고, 사우디 철도청과도 2조5000억원 규모의 철도차 제조 공장 설립 협약을 맺으며 네옴프로젝트에 연착륙한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해 국빈 방문 당시 라이브 바카라 전시관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뉴시스]](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405/38560_28571_1355.png)
“디지털 트윈, 스마트시티 약진 앞으로”
라이브 바카라의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기업은 건설도 중장비 기업도 아닌 네이버라는 평가가 나온다.네이버의 라이브 바카라 수주 핵심 키워드는 ‘디지털 트윈’이다. ‘현실을 가상에 옮기는’ 기술을 뜻하는 디지털 트윈은 라이브 바카라를 넘어 사우디 전역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분야다.
정부도 이러한 기조에 맞춰 스마트시티 수출 프로젝트를 강조하고 있고, 이와 맞물려 네이버는 사우디 최대 국영기업 아람코의 자회사 아람코 디지털과 손을 맞잡는 등 접점을 늘려나갔다.
아람코가 네이버를 파트너로 지목한 이유는 디지털 전환과 기술 혁신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네이버와의 협업으로 한꺼번에 다양한 IT 분야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자원 의존도를 줄이며,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하는 경제 다각화에 집중하고 있는 점도 궤를 같이한다. 라이브 바카라의 조성 역시 포스트 오일 시대를 여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네이버와 사우디의 인연은 지난 2022년 11월 네이버가 국토교통부 주도 사우디 수주지원단 ‘원팀코리아’의 일원으로 사우디를 방문한 것을 기점으로 지속되고 있다. 네이버는 네이버와 네이버클라우드, 네이버랩스 등 ‘팀 네이버’의 기술을 소개했고, 사우디로부터 높은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마제드 알 호가일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 장관의 네이버 제2사옥 1784 방문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3월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투자부와 MOU 체결을 통해 사우디의 국가 디지털 전환(DX)을 위한 협력체계까지 이뤄내며 관계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사우디 정부로부터 1억 달러 규모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 사업을 수주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국내 기업이 스마트시티 조성을 위한 필수 인프라인 클라우드 기반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구축하는 첫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삼성물산과 손을 잡고 인프라를 넘어 스마트시티 조성을 위한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다. 네이버의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삼성물산의 건설 역량을 결합해 스마트빌딩, 이를 넘어 스마트시티 시장을 정조준하겠다는 포부다.
사우디에서 양 사는 데이터센터·공항·쇼핑몰·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협업과 첨단 ICT 기술 융합을 통한 AI·로보틱스·자율주행·확장현실(XR) 개발 등의 협업도 진행할 방침이다.
네이버는 올해 3월에도 아람코 디지털과 AI·클라우드 사우디 진출을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 사우디 대중교통공사인 SAPTCO와 지능형 교통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으며 현지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바이오인식 알고리즘과 단말기, 소프트웨어 등 솔루션을 제공하는 슈프리마도 라이브 바카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슈프리마는 왕족과 VIP가 이용하는 네옴병원 출입통제 솔루션을 납품하기로 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슈프리마는 병원을 넘어 고위 관리자용 네옴빌라 숙소에도 솔루션을 공급하기로 했으며, 현지 무인점포 운영용 보안기술 지원사업까지 따내겠다는 목표다.
“지지부진한 라이브 바카라 수주? 본게임은 아직 시작 전”
지난 2년간 라이브 바카라발 일감이 쏟아지지 않으면서 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올해 본격적인 라이브 바카라발 일감 발주가 쏟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프라 등 1단계 조성사업이 계획상으로 내년에 마무리되는 만큼,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2단계 수준의 사업입찰을 위한 설명회가 활발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당시 국내 건설사들이 현장설명회에 참여하는 등 수주에 의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부터 라이브 바카라의 핵심인 더라인의 중심 시설을 시작으로 본게임으로 불리는 굵직한 일감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총길이 170km에 달하는 더라인의 연결 커뮤니티 벨트 조성 관련 12개 공사의 패키지 입찰에 건설사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더라인의 경우 라이브 바카라의 핵심으로 꼽히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수주에 성공할 경우 향후 단계 공사 참여에도 더욱 유리하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진행 중인 라이브 바카라 지하 터널 공사는 170㎞ 중 28㎞ 구간을 맡은 것”이라며 “나머지 150㎞ 구간의 발주도 곧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기에 올해부터 라이브 바카라 인프라 관련 수주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라이브 바카라 2단계 수주에 맞춰 정부 역시 올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400억 달러의 일감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중 일정부분이 라이브 바카라를 비롯한 중동에서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직 인프라 조성이 이뤄지는 등 라이브 바카라 프로젝트 1단계에 불과한 만큼, 향후 2, 3단계 본공사가 연이어 발주될 경우 국내 건설사들에게 기회가 많이 돌아갈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올해 사우디 라이브 바카라의 2단계 프로젝트의 발주가 대거 예정돼 있어 향후 국내 건설사들의 수주량 증가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