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취지는 좋다. 선의(善意)가 담겼다. 그런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의도와 다르게 엇박자를 내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역대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많은 정책이 그랬다. 과연 노란봉투법은 다를 수 있을까.
김다린기자 quill@fortunekorea.co.kr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8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사진=뉴시스]](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8/49624_43099_5534.jpg)
“미국 기업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다.(제임스 김 암참 회장)” “국회가 경제계의 요구는 무시하고 노동계 요구만 반영해 법안 처리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강력 규탄한다.(경제 6단체)” “최소한의 노사관계 안정과 균형을 위해서라도 경제계의 대안을 수용해 달라(손경식 경총 회장)”…
재계의 반대에도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노조가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길을 열고, 기업의 보복성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는 걸 골자로 하는 법이다. 노동계는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반면, 재계는 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라며 반대한다.
이유가 있다. 쟁의행위가 지금보다 빈번하게 생겨날 수 있고, 노사관계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글로벌 기업이 투자를 꺼릴 수 있다. 원청이 하청업체 근로 조건에 책임을 지게 되면 기업은 전반적으로 더 많은 인건비를 내야 할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
여론의 우려도 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자체 소통플랫폼 ‘소플’을 통해 국민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보자.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산업현장의 노사갈등은 어떻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응답자의 76.4%는 “보다 심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2차 상법 개정안을 둘러싼 흐름도 비슷하다. 이 법안에는 자산 2조 원 이상의 상장사가 이사를 선임할 때 집중투표제를 의무적으로 적용하고, 다른 이사들과 분리 선출하는 감사위원을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소수 주주의 권리 보호와 경영 투명성 제고 등 긍정적인 요소가 있지만, 대주주의 경영권 위협 우려를 간과할 순 없다.
쟁점 법안 밀어붙이는 李 정부
물론 모든 이해당사자를 만족시키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불리가 전혀 없고, 장단점이 똑같이 상쇄되는 규제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다만 중요한 건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사회적 충돌을 줄일 수 있는 숙의와 조정 과정이다.
지금 정부와 국회가 보여주는 태도는 ‘속도전’에 가깝다. 법안의 취지를 살리되 예견되는 피해를 줄이는 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재계뿐 아니라 일반 여론에서도 불안감이 커지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만 그랬던 게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도 이를 되풀이해 왔다. 문제는 이렇게 밀어붙인 법안이나 정책의 결말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이 대표적이다. 2021년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태생부터 잡음이 많았다. 입법 과정에서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앞세워 밀어붙였고, 이를 막으려던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강력히 반발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과정은 더 지리멸렬했다. 양측은 몸싸움을 벌였고, 야당 지도부가 불법 감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자유한국당은 무려 26시간 넘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저항했지만, 끝내 법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이렇게 정치권의 소모적 갈등만 키운 공수처는 결과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공수처에 수천 건의 사건이 접수됐지만, 정작 2021~2024년 사이 기소 건수는 4건에 불과했다. 대표적 사건인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혐의’ 등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지금은 관련 사건을 모두 특검에 넘겼다. 일부에선 ‘공수처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겠다는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과는 더 참혹했다. 애초부터 계산 방식이 복잡해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왔고, 거대 정당은 이를 파고들었다. 위성정당을 급조해 의석을 늘리는 편법이 기본값처럼 자리 잡았다. 현역 의원들을 ‘꼼수 이적’시키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결국 국회는 소수 정당의 다양성이 아니라 위성정당 난립과 혼탁한 정당 지형만 남겼다. 명분과 실제가 다른 위선적 제도였는데도 개선하지 않고 벌써 두 차례나 선거를 치렀다.
윤석열 정부 때도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과정부터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 채 추천을 강행했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지에서 이뤄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사이 안보·교통·예산 문제 등 여러 우려가 제기됐지만 묵살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 복귀를 예고했다. 이전 비용엔 혈세가 들어갔고, 청와대 집무실 복귀에도 또 돈이 든다. 윤 전 대통령은 이전 과정에서 국가계약 및 공사 관련 법령을 다수 위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필수·지역의료 붕괴를 막을 대책으로 내세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사회적 파장이 더 컸다. 증원 필요성은 국민들도 지지했고, “정원 원상회복”만 외치는 의사단체도 설득력 없었지만, 정밀한 접근 없이 발표된 ‘2000명’이란 숫자를 고집한 윤석열 정부의 패착도 컸다. 결국 의사단체를 설득할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을 막지 못했다.
특히 연구개발(R&D) 예산 문제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비판이 컸다. 윤 대통령이 ‘R&D 카르텔 타파’를 외치며 일괄 삭감을 지시한 뒤, 과학기술 분야 1만여 개 과제가 줄줄이 중단됐다. 연구자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했고, 국제 공동연구도 위기를 맞았다. 정부는 부정 사용을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처럼 정권마다 ‘선한 취지’의 정책이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많았다. 제도가 취지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오히려 현장의 반발과 사회적 혼란을 키웠기 때문이다. 법안의 완성도나 사회적 합의보다 ‘정치적 승부’를 쫓은 결과다. 애초에 하나의 정책에 논쟁이 벌어지고, 찬반의 논리가 각각 일리가 있는 상황이라면 양쪽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공수처는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사진=뉴시스]](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8/49624_43101_578.png)
논쟁적 법안과 정책이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한 과거 사례를 되돌아본다면, 지금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절차와 설득이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일방적 처리보다는 공청회·간담회 등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통로가 절실하다. 법은 한번 제정되면 쉽게 되돌릴 수 없고, 그 피해는 수년간 누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신뢰도에도 큰 피해를 입힌다. 정책 실기가 누적되면 다음 정책을 추진한 동력을 잃게 된다. 한두 차례의 실패는 ‘의도는 좋았지만 준비가 부족했다’는 평가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크고 작은 정책이 계속 삐걱거리면, 국민과 시장은 정부의 역량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여론의 신뢰를 잃으면 향후 어떤 개혁 과제도 힘을 받기 어렵다. 정책 실패의 누적은 정권 전반의 추진 원동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