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슬롯사이트가수 ‘아담’은 혜성 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제 그의 후예들이AI 가상인간 기술에 힘입어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세연 기자mvdirector@fortunekorea.co.kr
![지난 10월 14일 경기도 한 공연장에서 진행된 슬롯사이트 아이돌 이터니티의 단독 콘서트에서 온마인드의 슬롯사이트 휴먼 나수아(SUA)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펄스나인]](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311/31596_23023_5636.jpg)
지난달14일 광명 아이벡스 스튜디오. 거대한 LED 스크린에 11명의 여자 아이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레이저와 조명은 깜깜한 무대를 비워둔 채 관객석을 향했다. 관객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무대 너머의 스크린에만 집중하며 연신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 콘서트의 주인공은 슬롯사이트 아이돌 그룹 '이터니티'다. 국내에서 슬롯사이트 가수가 장시간 단독 콘서트를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으로, 의아했던 여러 연출은 AI그래픽 전문기업 펄스나인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다. 펄스나인은 가상 인물 이미지를 콘텐츠에 합성하는 '딥리얼 AI'기술과 실시간 페이스 스왑(얼굴 변환)을 가능케 하는 '딥리얼 라이브'기술을 사용해 2021년 이터니티를 만들었다.
현장 관람객 반응은 다소 나뉘었다. 한 관람객은 "기대를 많이 안 했는데, 깜짝 놀랐다. '이런 방식도 괜찮구나'싶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슬롯사이트 아이돌의 씬을 주도해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관람객은 "열심히 준비한 것 같았고, 첫 슬롯사이트 휴먼 콘서트라 신기하기도 했으나 아직까지는 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좀 더 발전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담의 후예들
슬롯사이트 가수는 인공지능과 컴퓨터 그래픽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슬롯사이트 휴먼(가상 인간)이 가수 역할을 하는 것을 뜻한다. '본체'인 인간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본체가 존재하는 슬롯사이트 가수의 경우 사람이 특수의복을 입고 정해진 콘셉트에 맞게 연출한다. 본체가 없이 기술로만 제작한 슬롯사이트 가수는 외형과 목소리를 생성형 AI 등을 활용해 제작한다.
국내 슬롯사이트 가수의 시초는 1998년 데뷔한 슬롯사이트가수 아담이다. 당시에는 다양한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기술력과 콘텐츠 생성을 뒷받침할 자본이 부족해 '반짝 인기'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른 현재 AI와 딥러닝 등 기술이 발달하면서 펄스나인과 같은 업체들이 다시금 시장성을 타진해보고 있다.
대중성은 합격
현재 슬롯사이트 가수들은 대중성 면에서는 합격점을 받는 모습이다. 159만 유튜버 우왁굳이 제작한 슬롯사이트 걸그룹 '이세계아이돌'이 대표적이다. 이세계아이돌이 지난 8월 발매한 3집 앨범은 공개 하루 만에 200만 스트리밍을 달성했으며, 멜론 TOP100 6위를 기록했다. 빌보드 코리아 차트에서도 BTS 정국과 뉴진스에 이어 3위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 중이다.
슬롯사이트 IP 스타트업 블래스트의 슬롯사이트 보이그룹 '플레이브'역시 주목할 만하다. 플레이브가 지난 8월 공개한 미니앨범은 발매 일주일 만에 음반 판매량 20만장을 돌파해 화제가 됐다. 또 지난 9월 열린 팝업스토어에는 오픈 첫날에만 1000여 명이 방문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일부 팬들은 오픈런을 위해 밤새 대기하기도 했다.
3D 콘텐츠 전문기업 븨븨(VV)엔터테인먼트의 슬롯사이트 솔로 가수 '아뽀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넷마블 자회사)가 공동 기획‧제작한 '메이브'도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아뽀키는 450만 명이나 되는 틱톡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으며, 메이브는 유튜브에 공개한 데뷔곡 뮤직 비디오 조회수가 7개월 만에 2500만 회를 돌파했다.
![국내 최초 슬롯사이트 가수 아담의 목소리는 가수 박성철이 맡았다. [자료=JTBC 화면 캡처]](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311/31596_23026_616.jpg)
인기의 배경은?
슬롯사이트 가수들의 이 같은 인기는 '세대문화'에 기인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모든 문화는 세대문화로부터 출발한다. 특히 새로운 세대인 10대, 20대의 지지가 있어야 주류로 진입할 수 있다. 슬롯사이트 가수 또한 이들의 픽(pick)을 받아 오늘날의 인기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세대의 자기과시형 소비도 나타난다. 가상적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세대는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테크놀로지 신문화도 수용할 수 있다',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는 슬롯사이트 가수도 충분히 좋아할 수 있다'는 식이다"
김 평론가는 슬롯사이트 가수가 잘파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로 '이상향적인 투영 모델이 가능한 점'을 들었다. 그는 "다른 음악산업과 달리 케이팝은 팬들에게 주도권을 주고, 그들의 요구와 피드백을 적극 수용한다. 슬롯사이트 가수는 이러한 점이 더욱 극대화됐다. 또 나이가 들지 않아 시간이 지나도 외형을 유지할 수 있고, 인간에게는 어려운 퍼포먼스도 쉽게 소화해낼 수 있다. 가상인간이기 때문에 스캔들이나 과거 문제를 일으킬 염려도 없다. 즉 팬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 있다. 이에 잘파세대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슬롯사이트 가수에 투영하면서 팬덤이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익성이 문제
그럼에도 슬롯사이트 가수 전망이 장밋빛만 있는 건 아니다.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수익성이다. '인기에 비례하지 않는 수익성'은 미디어‧엔터 업계에서 꽤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슬롯사이트 가수가 매력적인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이환욱 유안타증권 미디어‧엔터 애널리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슬롯사이트 가수 시장이 아직 초기단계라서 수익모델이 어떻게 정착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현재 엔터산업에서는 그저 '재미있는 콘텐츠 요소'정도로만 보고 있다. 현재 숫자(매출, 순이익 등)의 성장성을 보이기 어려운 만큼 산업 자체의 성장성도 평가하기 힘든 상태다"
이남수 키움투자증권 미디어‧엔터 애널리스트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아직 시장 규모도 작고, 슬롯사이트 휴먼이라는 콘텐츠가 현실과 괴리감이 있어서 중장기적 전망을 내놓기는 어렵다"며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하므로, 엔터 산업을 주도할 것인지 판단하기도 이른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환경제약 뒤따라
일각에서는 제작사들의 한계가 슬롯사이트 가수 성장을 발목잡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일수록 호감을 느끼는데, 오늘날 슬롯사이트 가수들은 콘셉트나 디자인에 있어 '우월성'을 중시하는 것 같다. 마치 과거 SM엔터테인먼트가 아이돌을 신비로운 콘셉트로 어필한 것과 같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방식이 잘 먹히지 않는다. 처음에만 '와'하지 이내 공감 포인트가 적다는 것을 느끼고 관심이 식을 수 있다. 기술적인 부분만 앞서가고, 대중문화의 현주소는 반영하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국 환경의 특수성이 슬롯사이트 가수에 비우호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박지은 펄스나인 대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콘텐츠를 평가하는 수준이 높다. 어떤 사안을 볼 때 긍정적이기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슬롯사이트 가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는 '성장형'가수도 좋게 보는 편이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이터니티처럼 인간을 닮은 슬롯사이트 가수들은 국내에서 이제 막 시동을 건 상태라 플레이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