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은 시작부터 뒤숭숭했다. 연초부터 시작된 경기침체 우려는 기업들의 잇따른 구조조정 소식으로 다가왔다. 글로벌 IT기업들부터 한국 중소 스타트업까지 코로나19위기 속에서도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보였던 기업들이 알고 보니 속 빈 강냉이로 전락하며 ‘혹시 우리 회사도 문제 있는 것 아니야’라는 불안감으로 번졌으니, 올해 상반기는 참 힘들었다.
이런 분위기는 잡플래닛 리뷰에도 드러났다. 특히 외국계 기업 리뷰에서 ‘구조조정’ 키워드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훌륭한 연봉과 복지, 사내문화까지 ‘다 좋아서 이직할 수가 없다’는 꿈의 기업으로 꼽히던 곳이라 더 눈길을 끈다.
국내 기업 역시 위기를 피해 가지 못했다. 유니콘을 바라본다던 스타트업들은 구조조정을, 국내 굵직한 대기업들은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아니 이 회사가 구조조정을 한다고?’ 싶었던 회사들이 적지 않았다.
기우가 아니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2023년 2분기 시중 자금흐름 동향과 주요 이슈 점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외부감사 대상 비금융법인 가운데 한계기업 비중은 14.4%로 2018년(9.8%)보다 4.6%포인트 올랐다. 한 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는 금융비용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존립 자체가 위기인 기업이 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직장인들 역시 답답했다. 고용은 불안하고 그렇다고 당장 회사를 나가자니 먹고 살 길이 걱정이고. 그래서일까. 2023년 상반기 평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급여·복지’ 만족도가 전체 만족도에 미친 영향력이다. 상위 20개 기업 중 급여·복지 부문에서 4점 대 이하를 받은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상위권 기업이라도 워라밸이나 사내문화, 경영진 만족도 등 회사별 장단점에 따라 3점대를 기록한 항목이 있기도 했지만 유독 급여·복지만은 4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급여·복지’ 영향력 절대적… 스타트업은 순위권 밖으로
![[자료=잡플래닛]](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310/31126_22565_1045.png)
올해 상반기 직장인들이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를 평가할 때 급여·복지 수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워라밸이나 사내문화가 조금 아쉽더라도 급여·복지 수준이 훌륭하다면 ‘우리 회사 괜찮다’며 전반적인 만족도가 높았다는 뜻이다. 어느 때보다 ‘보상’에 대한 중요성이 커진 2023년 상반기였던 셈이다.
언제는 보상이 중요하지 않았던 적 있었나 싶지만 한동안 요즘 직장인들은 워라밸이나 사내문화 등 돈 이외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ㅍ 분위기가 있었다.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IT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 공기업들을 제치고 일하기 좋은 기업 순위 상위권을 휩쓸었다. 당시 이들 기업 리뷰에는 ‘성장’에 대한 기대감과 ‘뛰어난 동료’ ‘자유로운 사내문화’ 등이 장점으로 언급됐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뀌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상위권에 오르지 못했던 기업들이 2023년 상반기 기준엔 높은 급여·복지 만족도를 무기 삼아 최상위권에 오르는가 하면 2점대 워라밸 만족도로 상위권에 오른 기업도 보인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높은 물가 상승률 탓에 실질 임금은 줄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상용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397만 9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늘었다. 하지만 물가를 반영한 월평균 실질임금은 359만 8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줄었다. 월급은 9만 5000원 늘었지만 물가 상승으로 체감하는 월급은 6만 3000원 줄어든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는 여전하다. 300인 미만 사업체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350만 5000원으로 300인 이상(630만 2000원) 기업의 55.6% 수준이다. 통계청의 ‘2021년 기업 규모별 연령대별 소득’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나이가 들수록 커졌다. 20대 후반 1.6배, 50대 초반에는 2.5배까지 차이가 대폭 증가했다. 특히 평균 연봉이 1억원이라는 회사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면서 요즘 직장인들이 ‘이 회사 연봉 괜찮네’를 책정하는 기준이 ‘연봉 1억원 달성까지 얼마나 걸리나’란다. 그러니 1억원까지 갈 길이 깜깜한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졌을 터다.
워라밸, 회사 만족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네이버 그린팩토리 내 사내 도서관 모습. [사진=네이버]](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310/31126_22567_1047.png)
요즘 직장인들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워라밸’에 대한 평가는 생각해 볼만 지점이다. 워라밸이 좋다는 회사 중에는 급여·복지, 성장가능성, 사내문화, 총만족도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곳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워라밸 점수만 높고 총만족도는 낮은 회사들은 “워라밸은 좋지만 연봉이 거의 오르지 않음” “연차가 쌓여도 업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많다” “다니기 편하지만 미래(비전)가 없어 다니기 힘들다”는 등의 평가가 나왔다. 오히려 워라밸 수준은 조금 낮더라도 이를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급여·복지, 성장가능성 높은 회사가 총만족도는 높았다.
물론 그렇다고 워라밸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워라밸 만족도가 매우 낮은데 총만족도가 높은 곳은 찾기 힘들다. 상위권 기업들의 워라밸 만족도는 대부분 3.5점 이상으로 높은 수준이다. 워라밸은 구성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작용했지만 충분조건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워라밸 만족도는 높지만 총만족도가 낮은 회사의 경우 그나마 워라밸이라도 좋기 때문에 다니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선후 관계를 다시 정리하자면 워라밸이 좋은 이유가 대충 일해도 되는 분위기 속에서 배우는 것도 없고 성장성이 없어서라면 궁극적으로 회사에 만족하며 일하기엔 어렵다. ‘요즘 직장인들 워라밸만 챙긴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연봉·복지, 성장에 대한 욕구 역시 결코 작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