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셔터스톡]](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306/28817_20256_11.png)
과거 증권가에서 한 임원이 “메모리칩을 자갈 대신 사용해 콘크리트 작업을 하자”는 의견을 냈다는 풍문이 돌았다. 불황으로 그만큼 슬롯사이트 가격이 저렴했다. 슬롯사이트 산업은 경기 변화가 가장 심한 산업이다. 경쟁도 치열하고 투자금을 충분히 확보할 만큼 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한국 슬롯사이트 산업의 ‘흑역사’
당시 풍문의 주인공은현대전자(당시 현대그룹 자회사)이다. 지금은 간판을 내렸지만, 당시 아주 의욕적으로 메모리 슬롯사이트사업에 뛰어들었던 기업이다. 슬롯사이트 생산·판매는 정말 어려운 사업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슬롯사이트 사업은 사실 천문학적인 돈을 날린 경험이 있는 ‘흑역사’를 갖고 있다.
흑역사는1997년 11월 말에 벌어진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슬롯사이트, 철강, 자동차 등이 과잉투자 산업으로 분류되면서 ‘빅딜’이라는 형태의 산업구조조정이 시작된다. 당시 논란이 가장 큰 분야는 슬롯사이트였다. IMF 전 1994~1996년은 슬롯사이트 호황기였다. 삼성전자·현대전자·LG슬롯사이트 모두 매출이 크게 늘었고, 그동안의 투자비를 회수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이익을 냈다.
그러나 1997년부터 슬롯사이트 산업은 불황 사이클에 접어들었으며 그 해 말에는 외환위기까지 닥쳐왔다. 현대전자와 LG슬롯사이트는 그해 각각 1835억원, 2897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삼성전자 슬롯사이트 부문은 적자를 덜 냈으며 유보된 현금이 많았다. 결국, 삼성전자를 제외한 현대전자와 LG슬롯사이트가 빅딜 대상이 됐다.
당시 정부가 LG슬롯사이트의 자금줄을 죄면서 매각을 종용한 결과,현대전자가 LG슬롯사이트 주식 9,122만 주(지분율 약 60%)를 인수함으로써 LG슬롯사이트 경영권을 확보했다. LG슬롯사이트 주식 양수도 대금은 2조5,600억원으로 알려졌다.
LG슬롯사이트를 인수한 현대전자는 2001년사업부의 대다수를 매각하고 슬롯사이트 사업부만 남겼다. 그리고 사명을 하이닉스로 개명하게 된다. 이후, 위기 이전 4만원대 주가는 무려 135원까지 떨어졌다.
SK,하이닉스 인수 후 처음 맞는 슬롯사이트 불황
하이닉스는 2005년부터 상황이 호전되는 듯했으나, 2008년 다시 실적이 악화되면서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자금 부족으로 새로운 장비 구입이 불가능해지자, 신기에 가까운 기술로 기존에 팔거나 버리려고 했던 슬롯사이트 장비를 재사용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생산성을 올리기도 했다.
이 기술로 하이닉스는 전 세계 슬롯사이트 업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당시 업계 관행상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슬롯사이트 장비의 중고거래가 중국을 중심으로 활성화됐다. 쉽게 말하면 하이닉스는 핸드폰 리퍼 제품처럼 ‘슬롯사이트 장비 리퍼’를 세계 최초로 자체 제작해 사용한 회사이다.
시장에 나온 하이닉스를 최종적으로 매각 인수 경쟁에 참여한 곳은 SK그룹과 STX였다. 이 중 STX가 돌연 인수 의사를 철회하면서 SK텔레콤이 3조 4267억원에 단독 입찰해 인수에 성공했다. 2012년 3월 23일 정식으로 SK그룹에 편입되었으며 사명도 SK하이닉스로 바꿨다.
SK하이닉스는 현대슬롯사이트 인수 후 10년간 무난한 항해를 해왔다. 많이 벌고 많이 썼다.2014년에는 매출 17조 1000억원, 영업이익 5조 1000억원으로 약 30%대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2018년은 매출 40조4451억원과 영업이익 20조8438억원을 벌었다. 2021년도 40조원울 넘었으나 영업이익은 12조4103억원으로 줄었다. 번 돈으로 10조원이 넘는 회사 인수에도 참여했다.
불황은 갑자기 다가왔다. 2022년 2분기 분기별 실적이 최고치 기록 후, 4분기(영업익 1조8984 적자)부터 2023년 1분기(영업익 3조4023억원 적자)까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설비투자계획도 지연되고 있다. 2023년 설비투자는 작년 19조원에서 올해 50%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대만에 밀리는 이유
슬롯사이트는 휴대폰, 컴퓨터 등 전자장치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핵심부품으로 입출력, 감지, 연산, 변환, 저장, 전달 등의 기능을 한다. 슬롯사이트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기억저장 기능을 담당하는 DRAM과 NAND 플래시 등 메모리 슬롯사이트가 있다. DRAM(D램)은 NAND 플래시보다 속도가 빠르나 정보가 휘발되며, NAND 플래시는 D램에 비해 속도는 느리나 전원 종료 후에도 데이터가 유지된다.
시스템 슬롯사이트는 데이터 연산제어 등 정보처리 역할 수행을 목적으로 제작된 슬롯사이트로, 전자기기의 두뇌 역할을 수행한다. 중앙처리장치(CPU),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다품종 맞춤형 슬롯사이트 산업이다. 마지막으로 DAO는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콘덴서 등과 같은 단일 기능을 수행하는 개별슬롯사이트를 뜻한다. 소리·온도와 같은 아날로그 신호를 전기 신호로 변환시켜 주는 아날로그 슬롯사이트(이미지센서, 터치컨트롤러 등을 포함한다.
한국은 메모리 슬롯사이트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능력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메모리 슬롯사이트 시장에서 각각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 내 슬롯사이트 생산량 기준(2021년)으로는 대만이 전 세계 생산량의 24.2%로 세계 1위이다. 한국은 19.9%, 중국은 17.6%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대만, 중국과 함께 일본(14.7%) 미국(10.2%) 5개국에서 생산되는 슬롯사이트의 비중은 합쳐서 86.6%로서 세계 전체 생산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비중이 76%를 넘는다. 이는 현재 미국과 유럽 각국이 전 세계 슬롯사이트 공급망 재편을 적극 추진하는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자국 내 슬롯사이트 생산량이 대만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한국 기업의 중국 등 해외 생산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메모리 슬롯사이트의 대중국 수입 비중이 76%로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생산물량이 한국으로 수입되기 때문이다.
대만은 TSMC를 내세워 시스템 슬롯사이트 분야에서 세계 최강이다. 한국의 대만으로부터 시스템슬롯사이트 수입 비중이 43% 넘는다. 대만은 이 분야에서 전 세계 생산량의 36.9%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8%에 불과하다. 중국과 미국이 각각 17.1%, 14.5%를 차지해 한국보다 높다.
메모리 분야만 보면 생산량 기준 한국의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시스템슬롯사이트 등 모든 슬롯사이트 품목을 포함하면 대만의 TSMC(14.9%)가 2위이다. SK하이닉스는 6.3%로 낮아져 일본 Kioxia보다 낮은 4위에 머물러 있다.
대만의 시스템슬롯사이트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파운드리 분야 때문이다. 파운드리 기업은 대부분 대만 내에 거점을 두고 있으며 전 세계 파운드리 물량의 49.4%를 차지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3%에 불과하다. 중국의 26.8%를 합치면 중화권 국가에서만 8인치 웨이퍼(wafer) 1000장 환산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물량의 76.2%를 생산해 내고 있다. 이 또한 슬롯사이트 공급망 재편의 핵심 이유이다.
시스템 슬롯사이트 산업은 설계(팹리스, Fabless)와 생산(파운드리, Foundry)이 분업화된 구조를 갖고 있다. 슬롯사이트 생산시설(또는 제조공정)을 Fab(팹)이라고 하는데 이는 Fabrication을 줄인 말이다. 팹리스는 미국 퀄컴과 같이 생산시설(Fab) 없이 소프트웨어 영역인 설계·개발만을 수행하는 회사를 말한다. 파운드리는 팹리스가 설계한 슬롯사이트를 ‘위탁생산’하는 업체이다.
우리나라 슬롯사이트 업체들이 시스템슬롯사이트 시장에서 몫을 키워야 하는 이유는 이 시장이 세계 슬롯사이트 시장의 50~6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슬롯사이트 시장보다 약 1.5배 큰 규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경기변동의 영향을 메모리 분야보다 적게 받는다. 메모리 슬롯사이트는 ‘생산 후 판매 방식’으로 재고부담이 커서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가격변동이 심하게 발생한다. 반면, 시스템 슬롯사이트는 수요자의 요구 사항에 맞춰 제품이 생산되는 ‘주문형 방식’이어서 수요·공급 불일치에 따른 시황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다.

미·일 슬롯사이트 공급망 구축과정에서 이해충돌 가능
종합해 판단해 보면, 미국의 슬롯사이트 공급망 구축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슬롯사이트 설계와 장비 생산에서 세계 최강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맞춤형 제작 능력 1위인 대만의 TSMC와 같은 파운드리 업체, 그리고 종합슬롯사이트 생산능력 1위인 삼성전자가 미국 내에서 미국 기업들과 협업한다면, 분명 첨단기술 분야에서 강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편, 일본 입장은 미국과 많이 다르다. 최근 일본이 슬롯사이트 산업에서 종종 중국과 협업 의지를 내비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가능하다. 일본은 슬롯사이트 장비는 물론, 특히 소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장비 분야에선 많은 경우 미국 업체들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일본의 장비·소재 업체들에 있어 중국은 포기하기 힘든 가장 매력적인 시장임이 분명하다. 참고로, 슬롯사이트 산업에서 한국이 가장 취약한 분야가 장비와 소재 부문이다.
메모리 슬롯사이트 생산만으론 생존할 수 없다
한국 슬롯사이트 산업은 장비와 소재 분야에 매우 취약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수입금액 1만 달러 이상인 80개 품목 중 30개 품목의특정국 수입의존도가 9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비중으로 보면 37.5%의 품목이 해당한다. 이는 주요 슬롯사이트 생산 국가 중 단연 높다.
대만은 같은 기준으로 보면 4개 품목만이 특정국 수입의존도가 90%를 상회했으며, 비중으로 계산하면 12.1%에 불과하다. 미국, 중국, 일본은 슬롯사이트 장비 수입의존도가 90% 이상인 품목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비와 소재 수입의 정도는 슬롯사이트 생산업체 수익성과 직결된다. 자칫 팔면 팔수록 남 좋은 일만 시키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과거 한국 기업들이 슬롯사이트 사업에서 날린 돈과 지금까지 이어온 모든 투자금 총액을 감안하면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슬롯사이트 산업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믿기 힘들다. 기업들이 슬롯사이트 사업을 시작한 이래,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삼성전자로 인한 ‘착시현상’에 불과 하다는 생각이다.
삼성전자가 시스템 슬롯사이트 분야에 끊임없이 막대한 투자를 이어 가는 것은 종합슬롯사이트 회사로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읽힌다. 지금처럼 한국의 슬롯사이트 생산 업체들이 오로지 메모리 슬롯사이트 분야서만 강자로 남는다면, 한국 슬롯사이트 산업의 미래는 암울하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 슬롯사이트 산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절실한 시점이다.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슬롯사이트 산업이 한국 수출의 18%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다면 그에 걸 맞는 경쟁력과 수익성을 갖추어야 한다.
/ 슬롯사이트 윤두영 글로벌기업연구소장 miche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