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는 글로벌 석유·가스 산업이 공급 과잉, 수요 둔화, 무역 불확실성 등의 영향으로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 Ratings)에 따르면 글로벌 석유·가스 산업이 새로운 ‘침체(deteriorating)’ 단계에 접어들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관세 불확실성, 석유 수요 둔화, 그리고 OPEC을 비롯한 산유국들의 공급 확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피치는 6월 1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5년 에너지 산업에 대한 전망을 기존 ‘중립(neutral)’에서 ‘악화(deteriorating)’로 하향 조정했다. 특히 지난 4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발표와 OPEC 및 주요 산유국들의 감산 해제 조치가 세계 시장에 이중 충격을 줬다고 진단했다.

다만 피치는 “미국 내 석유·가스 기업들은 대부분 평균적으로 부채비율이 낮고, 재무구조가 건전해 이번 등급 조정의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단기적 국면에 그칠 경우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피치는 올해 전 세계 석유 수요 증가폭이 일일 80만 배럴(bpd)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기존 전망치였던 100만 배럴 이상에서 크게 낮아진 수치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OPEC과 브라질, 카자흐스탄, 가이아나 등 비OPEC 산유국들이 공급을 늘리고 있어 시장이 과잉 공급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흥미롭게도 해당 보고서가 나온 6월 11일, 미국과 이란 간 군사 긴장 고조, 미중 무역전쟁의 일시적 휴전, 그리고 긍정적인 물가 지표 발표 등의 영향으로 국제유가는 오히려 급등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68 달러까지 상승해, 5월 초 58 달러에 비해 10 달러나 뛰었다.

시장에서는 “OPEC의 증산 발표가 실제로는 과장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분석기관 리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의 프리야 왈리아 부사장은 “이라크, 카자흐스탄 등 일부 국가들이 할당된 쿼터를 자주 초과 생산해온 점을 감안하면, 실질 증산량은 발표 수치보다 낮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피치 외에도 S&P 글로벌은 5월 말 보고서에서 “2025년 미국 석유·가스 기업들의 총 자본지출은 최대 10%까지 감소할 수 있다”며 “이는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유가 변동성, 자본 효율성 확보 등의 복합 요인 때문”이라고 밝혔다.

무디스(Moody’s) 역시 지난 5월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100년 만에 처음으로 Aaa에서 하향 조정했다. 결정적인 계기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 재점화가 작용했다고 밝혔다.

미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DOE)도 자체 전망을 통해 생산 하락을 경고하고 나섰다. 6월 10일 발표된 단기 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미국 원유 생산량은 사상 최고치인 일일 1350만 배럴을 기록한 뒤 감소세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2026년 말에는 1330만 배럴 수준으로 소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OPEC+는 2022년 이후 약 586만 배럴 규모를 자발적으로 감산하며 시장 안정을 꾀해왔다. 이는 전 세계 수요의 5%가 넘는 규모였다. 하지만 올해 4월, OPEC+는 일일 200만 배럴 이상 증산하겠다고 발표하며 그 흐름을 뒤집었다. 5월 말에도 7월 추가 증산에 합의하면서 공급 확대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2017년 초 하루 880만 배럴을 생산하던 수준에서 2025년 1350만 배럴로 50% 이상 증가했으나, 이제는 정점을 찍고 감산 전환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퍼미안 분지(Permian Basin) 중심의 대표 셰일 업체 다이아몬드백 에너지(Diamondback Energy)의 트래비스 스타이스 회장은 5월 주주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현재 원자재 가격 수준에서는 미국 석유 생산이 정점을 지났다고 판단한다. 이미 미국 내 육상 석유 생산은 감소세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 글 Jordan Blum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

저작권자 © 슬롯 무료 사이트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