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는 언제나 보스턴 레드삭스 모자와 크록스 신발을 착용하고 있다.정상회담을 겸한 경제사절단에서도, 대통령실 초청 행사에서도 벗지 않는다. 그는“(상황에 따라 원칙을 바꾼다면) 브랜드의 진정성이 없어진다”고 말한다.
그는 ‘산업용 자율주행 글로벌 1위’라는 브랜드를 꿈꾼다.
문상덕 기자mosadu@fortunekorea.co.kr 사진김용호

●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1991년생. 중학교 1학년 당시 미국 보스턴으로 유학 갔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2017년 회사를 창업했다. 그해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자율주행대회 ‘Self-Driving Car Challenge’에서 라이다 활용 자율주행 부문 1위에 올랐다.
이한빈 대표는 인프라 주행이라는 도메인을 찾았다. 그리고 자동차 탁송을 넘어 주차장 발레파킹, 물류센터 내 트럭 주행 등 B2B 자율주행의 확장성도 강조한다.
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여전히 회사의 기업가치를 걱정한다. 시장이 아닌 기술에 대한 걱정이다. 이들은 기술 트렌드가 ‘머신러닝 기반 자율주행’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본다.
웨이모를 포함한 기존의 자율주행 기술은 ‘인지→판단→제어’ 3단계를 차례로 거친다. 각종 센서로 주변 환경 데이터를 확보해서 인지 소프트웨어가 노이즈를 처리하면, 판단 소프트웨어는 이를 저장돼 있는 3D 지도와 대조하고, 사전에 사람이 코딩해 둔 도로 규칙을 기준으로 어떻게 움직일지(가속, 브레이크, 방향 전환 등)를 판단한다. 머신러닝 기법을 쓰지만, 각각의 소프트웨어 성능을 개선하는 데 적용한다.
반면 테슬라가 들고 나온 머신러닝 기반 자율주행은 인지와 판단을 하나로 합친다. 센서로 확보한 환경 데이터, 그리고 해당 환경에서 사람의 운전 습관을 지켜보며 학습한다. 그렇게 해서 다음부턴 센서가 데이터를 수집하면 사람처럼 바로 행동한다. 사람이 조건에 따른 행동을 일일이 코딩하고, 3D 지도를 사전에 구축하는 노력을 신경망 네트워크가 대체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생성 AI 중에서도 멀티모달 모델과 같다”고 설명했다.
기술 겨울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머신러닝 기반 자율주행은 예외였다. 테슬라와 함께 이 분야 선두주자로 꼽히는 영국의 웨이브(Wayve)는 지난 5월 시리즈C 투자 라운드에서 10억5000만 달러(약 1조438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소프트뱅크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참여했다. 현대차도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웨이브는 자사 기술을 ‘엔드투엔드 AI’라고 부른다. 현장에서 데이터 수집부터 판단까지 처리한다는 뜻이다.
인프라 주행에 뛰어들기 전부터 서울로보틱스는 인지 소프트웨어 기술이 뛰어난 회사로 꼽혔다. 하지만 인지와 판단을 AI가 대신하려는 지금, 회사의 장점은 이미 지나간 트렌드인 걸까? 그는 “여전히 자율주행 문제의 90%는 인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Q 어떤 뜻인가요?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생각해 보죠. 유닛에 목적지를 지정하면 알아서 목적지까지 갑니다. 게임 내 지형지물의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다시 말해 인지 문제만 해결하면 다음 단계는 어렵지 않단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게임만큼 단순하지 않죠. 돌발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데이터에 노이즈가 생기기도 합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코끼리가 등장하는 상황에 자율주행 차량이 대처할 수 있을까요? 어렵습니다. 어떤 자율주행 방식을 채택하든, 이런 상황을 예측해서 소프트웨어를 고도화해야 해요. 단적으로 테슬라 AI팀의 90%가 인지 문제에 집중해요.
Q 당장은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센서를 많이 붙이는 식으로 성능을 높여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식 마인드예요. 하드웨어 개발에 집중하는 거죠. 한국의 자율주행 기업이 막대한 자본을 쓰고도 어려운 것이 그런 접근 때문이에요. 인지 단계에서부터 소프트웨어를 잘 쌓아야 합니다.
Q 문제 해결까지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기울기가 점차 낮아지는 상승곡선을 떠올리게 해요. 100이 목표라고 할 때, 90까지는 가기 쉽지만 그다음부터 숫자를 높이기 어려워지는 거죠. 이들이 인지 문제를 해결하고 공도 자율주행 서비스를 실현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 지점에서 저희에게 기회가 있다고 봐요. 빠르게 상용화하고, 브랜드를 구축하고, 영역을 넓히는 겁니다.

기술은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예요. 제가 궁극적으로 증명하고 싶은 가설은 이거예요. ‘한국에서도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기술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다.’
Q 브랜드를 강조하네요. ‘B2B 자율주행 브랜드’가 최종 목표인가요?
아니요. 기술은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예요. 제가 궁극적으로 증명하고 싶은 가설은 이거예요. ‘한국에서도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기술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다.’ 한국 삼성전자, 현대차는 내수를 기반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일궜죠. 앞으론 힘들 거예요. 내수가 작아지니까요.
Q 1세대 창업자들의 ‘사업보국’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님 책을 좋아해요. 그 시대의 창업자 분들 덕분에 한국이 여기까지 왔죠. 하지만 한국은 황금기를 지나고 있다고 봐요. 2020년이 정점이었습니다. 유럽처럼 도태되거나, 혹은 현상 유지를 하는 길이 있을 거예요. 현상 유지를 하려면 누군가 미래를 잘 내다보고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철학과 달리 복장은 이국적입니다. 보스턴 레드삭스 캡과 크록스 신발을 고집해요.
캡과 크록스는 제 과거이면서, 서울로보틱스를 어필하기 위한 포인트예요.
중고등학교 재학 때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 경기를 한두 달에 한 번씩 봤어요. 야구장 가서 (레드삭스 응원가) ‘스위트 캐롤라인(Sweet Caroline)’도 부르고요. 그게 제 정체성 중 일부가 됐어요. 그리고 공대에 갔더니 다들 크록스를 신고 다니더라고요.
이걸 회사의 캐릭터로 활용했어요. 일관된 이미지가 있어야 브랜드가 되고, 사람들도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거기에 좋은 제품까지 갖추면 좋은 브랜드가 되겠죠.
그런데 기술 기업은 브랜드에 큰 관심을 안 가지더군요. 자이스(ZEISS) 렌즈와 국내 기업이 만든 렌즈, 기술적으로 보면 크게 차이 안 나거든요. 가격은 크게 차이 납니다. 결국 기술 기업도 브랜드가 있어야 하고, 브랜딩을 하려면 ‘마리오’가 있어야 합니다. (기업을 표현하는) 얼굴이 있어야 한단 겁니다. 그런데 미국에선 동양인을 잘 구별 못 하기 때문에 포인트를 준 겁니다. 마리오의 상징이 콧수염과 모자인 것처럼요.
Q 대통령실에 갈 때도 벗지 않는다고요.
‘얘는 벗으라면 벗는 친구구나’라고 느낄 때, 브랜드의 진정성이 없어지는 겁니다.
Q 기술특례상장을 준비합니다. 곧 매출이 난다면 다른 길도 있을 겁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사실상 기술특례상장이 없어졌다고 봅니다. 기술보다는 매출을 갖고 평가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사실상 기업가치 상한이 3000억원이라고 봐요. 그런데 이미 서울로보틱스는 그 정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요.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금 이상을 남길 수 있을지 걱정하시죠. 조 단위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텐데요.
그렇다면 왜 기술특례상장을 고집하느냐? 안 좋은 선례가 있다고 해서 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차라리 나스닥 상장이 쉽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돈을 빼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반대로 기술이 있고 매출이 있으니까, 벽을 깰 수도 있겠죠. 쉬운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