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3차 거버넌스 스토리 워크숍’에 참석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SK그룹]](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407/41037_31880_2119.jpg)
“한국의 행동주의 펀드는 낭만적이에요.”
한 금융권 인사는 최근 행동주의 펀드를 다시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올 초 정부가 발표한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에서 이들 행동주의 펀드가 주로 가입한 단체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이들의 활동을 눈여겨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 단체는 들뜬 분위기다. 이들 단체가 그토록 염원하던 기업 지배구조 개선 요구와 이사회 충실 의무 확대가 화두로 떠오르며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어서다. 특히 지난 11일 두산 그룹과 SK그룹의 계열사 간 합병 소식은 해당 단체가 강력히 주장하는 이사회 역할 확대를 추진할 명분이 됐다는 평가다.
이사회 충실 의무 확대, 즉 이사의 의무를 주주 권리까지 보호하도록 하는 법안을 행동주의가 염원하는 이유는 해당 법안을 근거로 주주권을 통해 기업의 의사 결정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돈을 버는 방식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주로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한 저평가된 기업의 지분을 일부 사들여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통해 이사회 의석을 확보한다. 이후 주가를 떨어뜨리는 경영진의 의사 결정을 제지하는 등 주가를 끌어올려 보유한 지분을 되팔아 차익을 실현한다.
주가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행동주의 펀드와 일반 주주의 이해는 일치한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임에도 경영에 관여할 수 없기에 경영진과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하며, 인수·합병(M&A)처럼 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의사 결정이 이뤄질 경우 경영진의 독주를 견제할 장치는 이사회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대두를 반기는 일반 주주도 적지 않다. 두산 그룹이나 SK그룹처럼 계열사 간 합병 및 물적·인적 분할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던 이유에서다. 그간 우리나라 재벌 기업은 자녀에게 기업을 승계하기 위해 60%에 달하는 상속세를 아끼고자 주가를 억누르고 계열사 쪼개기 또는 합치기를 반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업 가치 산정 방식이나 합병 비율, 주가를 떨어뜨리는 이사회 결의는 기업에 대한 일반 주주의 불신을 키우고 외국인 투자자로 하여금 국내 증시를 외면하도록 한다. 이른바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재벌, 즉 대주주의 행위를 방지해야 한다는 행동주의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행동주의의 ‘행동’은 다소 아쉬움이 느껴진다. 행동보다는 말뿐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불특정 대주주를 꾸짖고 주식회사의 원론적 개념을 설파한다. 최근에는 기업이 발표하는 밸류업 계획을 평가하고 점수를 부여하며 공개 세미나를 열고 언론에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이들 단체가 보내는 메시지는 수긍할 만하다. 문제의식 또한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도덕 선생님의 가르침에 가깝다. 마치 구한말 사대부가 허울뿐인 조정에 더없이 점잖은 문체로 일제의 만행을 꾸짖는 상소문을 올리듯, 실질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보다는 말과 글에 의존한 점잖은 사대부의 한계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행동주의와 그 동지들은 스스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이끌 주역이라며 자화자찬한다. ‘좋은 학교 나와서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하는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고도 한다. 분명 맞는 말이다. 대다수의 일반 주주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묻고 싶다. ‘엘리트’ 자존심을 세우느라 실효성 있는 전략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또는 대중을 우매한 계몽의 대상으로서 선동 대상으로 이용하고 있진 않은지 말이다. 터무니없는 오해라면 왜 이런 오해를 받는지 자문하길 바란다. 성찰을 통해 한층 성숙해진 우리나라 행동주의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 슬롯머신 이기는 방법 조채원 기자 cwlight22@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