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수집, 즉 ‘토토 대박(collection)’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경제성장에 발맞춘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이건희 토토 대박’ 기증의 효과도 상당했다. 비옥한 문화적 토양에서 자라난 MZ세대의 등장도 한몫했다. 일주일도 채 안 되는 ‘프리즈(Frieze) 서울’ ‘키아프(KIAF)’ 등의 아트페어에 7만, 8만 명씩 관람객이 다녀갔다. 한국 미술시장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다.
조각 투자든 원화 구입이든 미술품을 수집하는 사람이 ‘양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이 ‘컬렉터’라 불릴 만한 ‘질적’ 수준까지 겸비했는지는 미지수다. 토토 대박는 컬렉션 문화의 확대, 롤모델의 제시를 목표로 ‘Collector’s Choice’를 신설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컬렉터들의 철학과 지향, 취향과 안목을 공유하고자 한다.
글 조상인미술사와 미술경영을 전공한 저널리스트다. 미술시장 전문가이며 근대미술서 《살아남은 그림들》의 저자이다.

‘Collector’s Choice’의첫 주인공은 미술에 매료된 지 대략 40년 동안 10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한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다. 김 회장은 일찍이 토토 대박을 통한 예술후원으로 2013년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수상했고, 2019년 세종문화회관의 특별기획전 ‘세종 컬렉터 스토리’의 첫 주자로 자신의 수집품을 공개했다.
김 회장은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이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이면서 세종솔로이스츠 명예이사장이고 현대미술관회 회장,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나무포럼 회장이기도 하다.
Q 김희근의 첫 번째 토토 대박은 어떤 작품인가?
어려서부터 모으는 걸 좋아했고, 중고등학교 때는 우표 수집을 했다. 다양한 것을 수집하는 습관이 있어 여행지에서는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며 예쁜 잔을 사모으기도 했다. 1985년쯤부터, 가까운 친구들과 인사동에서 만나 점심을 먹은 후 갤러리 투어를 하는 게 일상이 됐다. 그때는 근대기(1930~40년대) 한국의 유명 작가 작품이 많이 거래되는 시기였지만, 어쩐지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다 구입한 생애 첫 토토 대박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판화인 ‘십자가의 예수’였다. 내가 크리스천이기도 하지만, 몇 개 뿐인 선으로 구현한 심오한 분위기나 녹색과 갈색의 색상 조화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가격은 70만~80만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지금도 여전히 집에 걸려 있다.
Q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한 점을 소개해 달라.
그건 자식을 여럿 둔 부모에게 누가 가장 사랑스럽냐고 묻는 것 같은 질문이다. 가장 비싼 것도 아닐 것이요, 제일 오래된 소장품이나 가장 최근 구입한 작품도 아닐 테다. 작품 하나하나가 각자의 사연을 갖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집 거실에 걸린 작품을 소개한다면 올라퍼 앨리아슨(Olafur Eliasson)의 유리 작업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호박색의 유리 설치작품인데, 소파와도 아주 잘 어울린다. 뒷면까지 훤히 비치는, 크고 작은 유리 구슬들의 조화가 매력적이고 싫증나지 않는다. ‘유리 덩어리가 무슨 예술이냐’고 따질 법한데, 그 평범한 유리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놓은 작가의 발상 자체가 참 대단하다. 수년 전 스위스의 아트 바젤에서 만난 작품이다.
Q 작품을 토토 대박 할 때 어떤 점을 중시하는가?
뛰어난 발상이다. 지나가다가도 “악” 소리 내며 걸음을 멈추고, “와” 하며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내는 작품들에 매혹된다. 벽산엔지니어링(서울 구로구) 집무실 앞에 설치된 오스트리아 작가 브리짓 코반츠(Brigitte Kowanz)의 작품이 그랬다. 네온사인과 거울을 재료로 착시효과를 만들었는데, 볼 때마다 새롭다. 첫눈에 반해 단번에 산 작품도 있다.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작업인데, 마치 두툼한 모기 퇴치기처럼 생겼다.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그게 화성에서 온 우주의 소리라고 한다. 절대 다른 데를 쳐다볼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다. 희소성이 궁금증을 끌어내는 경우도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홀로그램 작업이 있는 갤러리를 찾아 미국 캘리포니아의 팜데저트를 두 시간이나 운전해 달린 적도 있다. 그렇게 이뤄진 나의 토토 대박은 전반적으로 밝고(bright) 편안한(comfortable) 분위기다.
Q 토토 대박터라 좋은 점은 무엇인가?
지난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동시대 미술의 경향성이 변하듯 미술작품에 대한 평가 기준이 변하는 게 아주 흥미롭다. 이를테면 기괴한 인물화를 그리는 조지 콘도(George Condo)에 대한 평가도 15년 전 내가 작품을 살 당시와 지금이 사뭇 다르다. 매년 글로벌 아트페어에 가고, 2년에 한번씩 비엔날레에 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화계 전문가로서 참석한다기보다는 지금의 미술계와 미술시장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살펴보고, 다른 토토 대박터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기 위해서다. 나는 그렇게 변화하는 세상을 파악한다.
Q 뉴 토토 대박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요즘은 ‘전업 컬렉터’ 혹은 ‘딜렉터(딜러+컬렉터)’가 있다고 하더라. 컬렉터라면 오래 사 모으는 사람일 텐데, 딜러인지 컬렉터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단기간에 자주 그림을 사고 판다는 뜻이다. 잠시 소장했다 이내 팔아버리는 방식이면 결코 오래 가는 컬렉터가 될 수 없다. 투자를 계기로 미술에 관심을 갖는 긍정적인 경우도 있지만 미술로 돈을 벌고자 한다면, 컬렉터가 아니라 생각한다.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그것을 자각하며 토토 대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가급적 업무 미팅을 사무실에서 진행하고, 방문객의 취향과 배경을 고려해서 작품을 바꿔 걸기도 한다. 색다른 접근법, 변화의 시작이 거기에 있다. 아트페어보다는 비엔날레를 먼저 가는 게 좋은 것 같다. 현대미술의 경향성을 먼저 파악해야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작품의 설치와 배치도 이리저리 고민해 보자. 거금 쓰고 사랑 담아 구입했으면 보고 즐겨야지, 작품을 수장고에만 두면 아까운 일이다. 그건 책 사서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만 두는 것과 같다.
Q 김희근에게 토토 대박이란?
토토 대박은 삶이다. 정말로 토토 대박은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다시 태어나더라도 건설업과 토토 대박을 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내가 수집하는 미술품은 항상 삶의 다른 측면들을 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미술품을 수집했기에 만나게 된 수많은 인연들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있다. 컬렉터 개념을 확장해, 기업인의 예술 후원인 메세나 활동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메세나협회에서는 재작년부터 ‘1작가 1기업’ 캠페인을 시작해, 우리 예술가의 뒤에는 한국 기업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기업이 돈만 열심히 벌면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행복의 척도가 국고(國庫)는 아니다. 이윤과 손해는 오락가락하겠지만 사회를 위한 배려, 더 오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위해서는 예술과의 동행이 중요하다.
▼서울 구로구 벽산엔지니어링 사옥 내 김희근 회장 집무실 앞에 설치된 브리짓 코반츠의 네온사인 설치작품. 벽산 임직원과 방문객은 누구나 자유롭게 소장품을 감상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