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이사회 역할 확대를 강조하는 가운데 경제단체 간 당위적 의견 대립이 확장성이 부족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브리핑룸에서 상법 개정 이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406/39425_29661_3230.jpg)
“금감원 원장님을 겨냥한 발표 같아요.”
지난 20일 한 세미나‘이사회 충실의무 확대’ 발표에서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발표 자료를 훑으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이사회의 책임을 기업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며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세미나가 너무도 적절한 시기에 열린 것에 대한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이사회 충실 의무 도입이 화두다. 정부가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근본적 개선책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역설하고 있어서다. 지배구조, 거버넌스 개혁의 일환으로 이 원장은 이사회 역할 범위를 확장하고, 기업에 공감을 얻고자 ‘배임죄’ 폐지를 제안했다.
그럼에도 기업 측 입장은 완강하다. 이사회 충실 의무가 확대되면 과도한 규제로 의사 결정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것이다. 지난 24일 한국경제인협회 등 8개 경제단체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에 대한 경제계 의견’이란 성명서를 발표하며 해당 제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재계의 의견은 기존과 같다.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면 기업의 이익과 상충해 경영 효율성과 경쟁력이 약화한다는 주장이다. 재계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강화하면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위한 의사 결정에 제약이 걸리며 운영 비용이 증가할 위험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자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튿날 곧바로 반박문을 발표하며 “근거 없는 위협과 가스라이팅을 접어야 한다”고 응수했다. 한경협 등의 의견이 사실과 법리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포럼에 따르면 경제단체의 주장은 지배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가스라이팅으로, 충실의무는 주주 간 이해충돌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한다. 이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상장기업 주식 저평가 현상)’의 원인을 주주 보호가 미흡한 탓이라며 주주 행동주의를 가치중립적이라 주장한다.
재미있는 건 양측 주장 모두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채택하도록 날 선 반응을 보이며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 ‘경영권’과 ‘주주권’을 대의명분으로 입장을 펼치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지만, 효율, 기초 등 추상적인 가치 외에 새로운 주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단체의 주장이 피부에 닿지 않는 이유는 양측 모두 당위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데 있다. 어느 한쪽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논리를 서로 ‘틀렸다’고 지적하니 집단 간 대결 양상으로 흐른다. 이런 경우 어느 한쪽이 의제를 선정하면 우위를 점한 쪽이 승리하는 싸움이 돼 버린다. 즉, 누가 먼저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일치하고 마음을 사로잡느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반면 해당 논의의 맹점은 바로 일반 국민과 주주를 설득할 만한 메시지가 부재하다는 데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논의를 진행했지만, 선진국 사례를 들어 당위성을 반복하는 것 외에는 정교한 논증이나 추론이 부재하다. 근본 개혁, 체질 개선, 고질적인 문제 해결이란 점에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각 ‘국민’과 ‘소액 주주’를 대변한다며 정쟁에 불을 지피고 당위적 메시지만 반복하는 것이다.
양 단체는 아전인수식 입씨름이 아닌 참신한 의제로 한국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성숙한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 정치권을 의식해 탁상공론에 가까운 소모적 정쟁만 부추기는 엘리트 의식으로 자본시장을 바꾼다거나 경영권을 지켜낸다는 대의명분은 위선으로 비칠 따름이다. ‘아래(국민, 주주)’가 아닌 ‘위(정치권)’에 소구한다면 그들만의 공허한 싸움에 그칠 것이다. 치밀하고도 치열한 논의를 통해 낙후한 한국 자본시장 수준을 끌어올릴 실질적 방안을 기대해 본다.
/ 카지노 꽁머니 즉시지급 조채원 기자 cwlight22@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