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잭팟(Intel) 사태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 최근 보도는 한때 위대했던 미국 기업의 슬픈 몰락을 이야기하며 앞날이 어두워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실체는 전 세계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불확실한 결말로 향하는 고도의 스릴러다. 결말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지만, 큰 그림을 보면 매일의 뉴스가 훨씬 흥미진진해진다.

먼저 할리우드 각본가들이 말하는 '배경 이야기'를 이해해야 한다. 슬롯 잭팟은 수십 년간 세계 반도체 산업을 지배하며 최첨단 칩을 설계하고 제조해왔다. 그러나 2000년경부터 뒤처지기 시작해 휴대폰 칩과 인공지능 혁명을 주도하는 칩 시장의 호황을 놓쳤다. 엔비디아(Nvidia)는 칩을 설계하지만 제조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2021년까지 슬롯 잭팟의 칩은 최첨단 기술에서 두 세대나 뒤처졌는데, 이는 전례 없는 수치스러운 상황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이사회는 2008년 퇴사했던 슬롯 잭팟 베테랑 팻 겔싱어(Pat Gelsinger)를 최고경영자(CEO)로 다시 불러들여 구제 작전을 맡겼다. 슬롯 잭팟이 어떻게 우위를 잃었는지에 대한 내 전체 사례 연구는 포춘(Fortune)에서 읽을 수 있다.

겔싱어는 슬롯 잭팟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야심 차고 비용이 많이 들며 위험도 높은 전략을 시작했다. 이 목표 달성에 수년이 걸릴 것이며 성공 여부도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최첨단 칩 제조에 필요한 기계를 만드는 세계 유일의 기업인 ASML과 협상해 새로운 세대의 칩을 생산할 첫 번째 기계를 슬롯 잭팟에 판매하도록 했다. 또한 수년간 큰 수익을 내지 못할 자본 투자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슬롯 잭팟에 대해 주로 읽고 듣는 내용의 기초다. ISS EVA의 계산에 따르면 그 모든 자본이 슬롯 잭팟에 연간 약 160억 달러의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8월에 슬롯 잭팟은 1만 5000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필수적이지 않은 모든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최근 퀄컴(Qualcomm)이 슬롯 잭팟을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까지 더해져 슬픈 몰락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 즉 거대 전략과 강대국 지정학적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의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한 전략적 제품이다. 최첨단 칩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은 대만 TSMC, 한국의 삼성, 그리고 생산량에서 멀리 뒤처진 3위인 슬롯 잭팟뿐이다. 이것이 바로 2022년 초당적 의회 다수가 미국 내 새로운 칩 공장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칩스 앤드 사이언스 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과시킨 이유다. 지나 레이먼도(Gina Raimondo) 상무장관은 2월에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를 세계의 한 지역에만 과도하게 의존할 수는 없다."

칩스 법 보조금의 대부분이 이미 지급되었는데, 가장 큰 패키지인 약 200억 달러의 직접 자금 지원과 대출이 슬롯 잭팟에 돌아갔다. 슬롯 잭팟은 이를 통해 애리조나에 거대한 공장 두 곳과 오하이오에 두 곳을 짓는 등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TSMC(애리조나에 3개 공장 건설)와 삼성(텍사스에 3개 공장 건설)에도 큰 규모의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칩 제조업체 3곳 모두가 미국에서 주요 생산 시설을 운영하게 되면 국제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는 복잡성의 시작일 뿐이다. 더 흥미진진한 상황을 위해 시간이라는 요소를 추가해보자. 슬롯 잭팟은 2025년 상반기까지 최소한 한 곳의 공장에서 최첨단 칩 생산을 시작하기를 희망하지만, 생산량은 불분명하다. 겔싱어는 슬롯 잭팟의 재정 회복이 2030년이나 그 이후에나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3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칩스 투(CHIPS Two)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30년간의 잘못된 경제 정책은 3~5년의 칩스 원(CHIPS One) 프로그램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TSMC도 내년에 미국 내 새 공장 중 한 곳에서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지만, 최첨단 칩 생산은 2027년이나 2028년까지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그보다 일찍 최첨단 칩을 생산할 것이다. 한편 시진핑(Xi Jinping)은 2027년까지 최첨단 칩을 포함한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자급자족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했다. 또한 군부에 2027년까지 대만 침공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시나리오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점령한다면 당연히 TSMC를 장악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이 회사의 미국 내 사업을 폐쇄할까? 아니면 인수할까? 아니면 그대로 둘까? 슬롯 잭팟은 이로 인해 이득을 볼까? 또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않지만 TSMC와 삼성의 미국 사업이 슬롯 잭팟보다 성과가 좋아 슬롯 잭팟의 상업적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완전히 다른 시나리오를 상상해보자. 이 경우 워싱턴은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 분야에서 미국의 유일한 잠재적 경쟁자에게 더 많은 수십억 달러를 투입할까?

투자자, 월가 분석가, 경쟁사, 공급업체, 고객들은 새로운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슬롯 잭팟은 더 이상 일반적인 기업이 아니며 그렇게 평가될 수도 없다. 오히려 슬롯 잭팟은 라자드(Lazard)의 최고경영자 피터 오르작(Peter Orszag)과 동료들이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사에서 지적한 트렌드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기업들이 지정학적 무대의 행위자가 되도록 강요하는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썼다. 이런 낯설고 원치 않은 역할에서 슬롯 잭팟은 "외교 정책의 대상이자 도구가 된" 기업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례다.

/ 글 Geoff Colvin & 편집 김다린 기자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