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련된 매너와 경청하는 자세로 사람들을 이끄는 소프트파워는 세대를 아우르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두 가지 모두 가진 리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다.
한국 여성의 유엔 최고위직 첫 진출, 비 외무고시 출신 첫 외교부서 국장, 대한민국 첫 여성 외교부 장관…. 지난 문재인 정부의 외교부 장관을 지낸 강경화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명예석좌교수를 설명할 때면 최초, 최고, 첫 등의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유엔 인도지원조정실(OCHA) 사무차장보로 근무하던 시기(2013~2016)에는 재난과 긴급상황이 터진 나라에 인도적 지원을 총괄조정하는 부서슬롯사이트 차석으로 활동했다. 세련된 매너와 안정된 목소리에 실린 유창한 영어실력은 총회, 안보리, 인권위원회 등 유엔 주요 협의체의 회원국들을 설득하는 과정슬롯사이트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글로벌 무대슬롯사이트 ‘소통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얻기도 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라디오 영어방송 PD, 아나운서로 시작한 그의 경력은 대학교수, 시민단체 회원, 유엔의 최고위직 인사를 거쳐 대한민국 외교 수장에 이르렀고, 고배를 마셨지만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도전으로 이어졌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젊은 세대를 위한 일을 도모하고 있는 그의 행보는 현재진행형이다. 슬롯사이트가울프강스테이크하우스에 마련한 인터뷰 전용 공간 ‘포춘룸’슬롯사이트 진행한 첫 인터뷰 자리에 강경화 전 장관을 초대했다.
삶과 사고의 기본 틀이 된 인권
Q 근황이 궁금하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휴식을 누리고 있다. 지난 3월 말 ILO 선거가 끝난 뒤 그 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보고,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화여대슬롯사이트 특강을 하고, 가끔 사회단체 등 외부 강연 요청에 응해 젊은 세대와 만나기도 한다.
ILO 사무총장 도전은 실패했지만, 선거에 후보로 나선 것이 처음이었던 만큼 그 과정슬롯사이트 많은 것을 배웠고, 우리나라 대표라는 책임감에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Q 지난 경력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인권이 떠오른다.
군부독재를 거쳐 민주화의 과정을 겪은 세대의 일원이라 표현의 자유 등 시민적, 정치적 기본권은 이미 삶과 사고의 틀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이를 기초로 유엔슬롯사이트 일하면서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포함해 더 폭 넓게 인권의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출발은 1995년 제 4차 세계여성대회에 참가했을 때다. 그때가 마침 유엔 창설 50주년이자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의 해가 2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당시 세계여성대회는 한국슬롯사이트만 90여개 여성관련 시민단체(NGO)가 참가하는 대대적인 행사였는데, 세종대 영문과 조교수로 일하고 있었던 나도 시민단체 일원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그때 개별적인 움직임보다 힘을 하나로 모으자는 취지슬롯사이트 한국여성NGO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그 대변인을 맡아 한국 여성의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전달하게 되었다. 2주간의 활동슬롯사이트 가장 큰 성과는 위안부 문제를 전세계 여성 NGO들에게 확실하게 알린 것이었다.
Q 유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그때였다고 들었다.
이전까지 나에게 유엔은 학창시절 강의슬롯사이트 배운 국제기구라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세계여성대회에 참가했던 2주간 유엔의 구체적인 존재감을 확인하게 되었다. 유엔이 나와 내 이웃의 구체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답을 모색하는 현장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멀리 있는 막연한 존재가 아니라 인권, 성평등 등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치와 규범들은 만들어나가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속슬롯사이트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최근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5000달러 등 다양한 지표로 보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민주화를 이루고 압축 성장을 하면서 내실이 단단하지 못한 분야들이 많이 있다. 성평등, 노동권 등에는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환하게 웃고 있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사진=슬롯사이트 김태환]](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207/22789_13847_3540.png)
기업, 노동자의 인권 보호∙존중∙구제 의무 커져
Q 언제부터 노동권에 대해 관심을 두었나?
2007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부대표로 일할 때, ILO 직원들과 실무차원슬롯사이트 협력을 많이 했다. 특히 가사노동자, 이주노동자, 성평등 관련 사안에 대해 자주 소통했다. 인권과 노동권 분야가 서로 나뉘어져있는 것 같지만 노동권은 인권의 일부다. 다만 노동의 현장슬롯사이트 일하는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이기 때문에 결국 노사간 협상과 합의를 거쳐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인권슬롯사이트 권리의 주체를 보호하고 보장하는 책임은 국가에 있다. ILO가 100여년에 걸쳐 만들어 낸 다양한 노동권 관련 협약들은 이를 비준한 국가의 정부에 이행 의무가 주어진다. 최근에는 ILO 밖슬롯사이트도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1년 ‘기업의 인권 이행지침(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UNGPs)’이 유엔인권 이사회슬롯사이트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이후 ILO의 ‘다국적기업 선언(개정)’에도 포함되었다.
이는 비준과 이행 의무를 수반하는 협약이 아니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따르는 규범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UN 차원슬롯사이트 기업의 인권 의무를 처음으로 명문화했다는 점슬롯사이트 의미가 적지 않다. 요컨대 정부는 기업슬롯사이트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protect)해야 하며, 정부가 의무를 다하지 않더라도 기업은 인권을 존중(respect)해야 하며, 기업활동으로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에게 효과적인 구제방안(remedy)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UNGPs가 채택된 후 10년간 많은 기업들이 실천하고 있다. 기업과 인권은 최근 유엔의 인권과 노동권 분야슬롯사이트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다.
Q 그때 어떤 역할을 했나?
2005년에 임명된 사무총장 특별대표가 정부, 기업, 노조, 시민단체 등과 폭 넓은 협의를 거쳐 UNGPs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 업무를 지원하는 부서슬롯사이트 일했다. 당시 그 부서의 차석으로 진전상황에 대해 수시로 보고받고 특별대표와 논의를 위해 만나기도 했다. UNGPs 채택을 기념하는 인권위 회의에 참석률이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작은 회의장을 준비했는데, 기업들의 참석 요청이 폭주하는 바람에 제일 큰 회의장으로 서둘러 장소를 옮겼던 기억이 난다. 기업들의 높은 관심에 크게 고무되었다.
Q 노동권의 영역은 어디까지 확장되고 있나?
플랫폼 등 디지털 영역슬롯사이트 새로운 형태의 노동에도 노동권이 확장되는 중이다. 또한 노동자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가 우리나라에도 공기업을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선진국슬롯사이트는 여러 나라슬롯사이트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에 자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슬롯사이트의 기업활동에 대해 인권실사(due diligence)의 의무를 지우는 법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경영이 중요해지면서 인권에 대한 기업의 관심은 커질 수 밖에 없다.
Q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에 있다고 보나?
산업재해로 1년에 사망하는 노동자가 지난 2021년 기준으로 2000명에 이른다. 사고로 인한 사망이 800여명, 업무 수행 과정슬롯사이트 발생한 질병으로 1200여명이다. OECD 최하위 수준이다. 구조적 요인이 적지 않다. 노동현장, 노동권,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이 아직 많다.
노동자 인권 보호돼야 기업∙경제도 지속성장
Q 왜 노동권이 중요한가?
노동권을 포함해 인권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이자, 사회적 역동성과 지속적 번영의 활력소다. 노동자의 존엄성을 무시한 자본의 무절제를 바로잡기 위해 ILO가 100여년 전에 태어났고, 사회적 지속적인 평화가 유지될 수 없다는 UN헌장의 정신, 그리고 1948년 UN총회슬롯사이트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의 전제 중 하나였던 ‘노동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라는 명제 역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민주주의의 성숙도가 바로 인권이며 노동권이다. 디지털 영역의 확장, 코로나19팬데믹 등으로 일의 형태가 바뀌면서 노동권에 대한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고 있다. 노동자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더 큰 성장을 위한 발판이 인권이다.
Q 외교부 장관 임기 내에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만 떠올린다면?
3년 8개월의 임기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많지만, 사진으로 남아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만 고른다면 2017년 12월초 공관장 회의 첫날 현충원 참배다. 외교부 공관장 회의는 해외에 주재하는 공관장들이 다 귀국해서 한자리에 모여 일주일간 우리의 외교전략을 논의하는 중요한 행사다.

첫날 아침 200여명의 공관장들과 본부 간부들이 현충원에 모여 도열하고 내가 앞장 서서 현충탑으로 이동하는 순간 갑자기 함박눈이 내렸다. 눈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외교부가 축복을 받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이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면서, 남성 공관장들 사이슬롯사이트 첫 여성 장관이 참배에 나서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준 기억이 난다.
상대방에 공감하고 경청하면 소통이 쉬워져
Q ‘소통의 달인’, ‘대화를 잘 이끄는 사람’ 등의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타고난 건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늘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하나의 우주라고 하지 않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때 그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 귀를 바짝 열고 듣게 된다. 그렇게 상대방에 공감(empathy)하게 되면 소통이 더욱 원활하게 된다. 정말 신뢰하지 못할 사람과 소통을 해야 할 상황슬롯사이트도 일단은 불신을 접어두고 먼저 듣고자 한다. 상대를 믿지 못하면 제대로 듣기 어렵다. 불신은 정확한 이해에 장벽이 된다. 요즈음도 ‘제대로 듣는다는 게 뭔가’하고 고민을 많이 한다.
/ 슬롯사이트 장선화 기자 report@fortunekorea.co.kr, 사진 김태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