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정책 과제 제시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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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최근 이슈가 된 일부 사모펀드의 '약탈적 인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자본시장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17일 밝혔다. 협의회는 한국상장회사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권용수 건국대학교 교수에게 의뢰한 연구보고서를 통해구체적인 대응 방안으로 ▲대량보유보고제도 재검토 ▲사모펀드의 수시보고 의무화 ▲구조조정·고용 축소 재발 방지 ▲전부공개매수제도의 신중한 도입 검토 등 네 가지 핵심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이번 보고서는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 사례를 비롯해, 과거 론스타의 극동건설 인수 사례를 대표적인 피해 유형으로 지목했다. 론스타는 1700억 원을 투자해 극동건설을 인수한 뒤, 채권 변제·유상감자·고배당·자산 매각 등을 통해 불과 4년 만에 7120억 원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린메일링, 초토화 경영, LBO(차입매수), 해체형 매수 등 약탈적 매수의 전형적인 수법으로 분석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에서 발생한 '이리떼 전략'과 유사한 방식이 한국에서도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복수의 투자자가 5% 미만 지분을 나눠 취득해 공동보유 신고를 회피하거나, 주요 투자자가 허위·지연 신고로 규제를 무력화하는 방식이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공동보유자의 범위나 '합의' 요건이 불분명해 제도적 허점이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일본처럼 외형적 사실에 근거한 공동보유자 간주 제도를 참고해, 국내 제도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사모펀드의 차입구조와 자산 매각, 고배당 등의 전략을 견제할 수 있는 공시·감독 체계도 미흡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MBK의 홈플러스·롯데카드 인수 사례처럼, 인수 직후 회사 자산을 담보로 차입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투자금을 조기에 회수하는 방식은 기업 가치 훼손은 물론 주주와 근로자에게 돌아가야 할 부의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모펀드가 자산담보 차입과 자산 매각, 이해상충 발생 여부 등을 금융당국에 수시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시정명령 불이행 시 해산명령까지 가능하도록 감독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업 인수 시 투자자들이 약속하는 고용 유지와 공장 가동 등 계획이 실제로는 무력화되는 사례도 문제로 지목됐다. 영국 캐드버리 인수 당시 크래프트가 공장 유지 계획을 발표했지만, 인수 직후 폐쇄와 구조조정을 단행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보고서는 영국처럼 '매수 후 약속(Post-offer undertakings)' 제도를 도입해 투자자의 계획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감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25% 이상 취득 시 전부 공개매수 의무화'를 골자로 한 입법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해당 제도는 강압적 부분 매수를 견제하는 효과는 있지만, 정상적인 M&A까지 위축시키고 산업 구조 재편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제도 설계 시 공정한 가격 규제와 예외 조항, 자금조달 능력 검증 등의 세부 보완이 필요하며, 기업과 주주 간의 건전한 대화 가이드라인 마련도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연구를 맡은 권용수 건국대학교 교수는 "사모펀드의 약탈적 인수는 단순히 경영권 문제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기업의 혁신 역량과 시장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며 "상법 개정의 취지와 기업지배권 시장 위축 방지 등을 생각하면 이사의 의무에 기초한 약탈적 인수 방어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이것이 어렵다면 영국의 '매수 후 약속' 제도처럼 투자자의 약속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틀을 마련해 우리 기업과 주주 가치 제고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최근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강화되었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제도적 장치가 아직 부족하다"며, "이번 보고서에서 제시된 과제들이 입법으로 구체화된다면, 기업과 주주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자본시장 질서가 확립되고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슬롯사이트 업 김타영 기자 young@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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