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행들은 5000억 달러가 넘는 평가손을 안고 있다. 고금리와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겹치면 금융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
![제2의 슬롯사이트사이트 파산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셔터스톡]](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5/48084_41231_5333.jpg)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시점, 미국 은행들은 여전히 높은 금리로 인해 막대한 평가손을 안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유발할 수 있는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의 동반)’ 우려는 대출 기관에 더 큰 압박을 가할 수 있다.
FDIC(연방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미국 은행들이 보유한 유가증권 평가손은 총 4824억 달러로 전 분기 대비 32.5%(1180억 달러) 증가했다. 이는 2023년 3월 SVB가 뱅크런으로 붕괴됐을 당시(5150억 달러)와 비슷한 수치다. 그해 말 최고점이었던 6840억 달러에도 근접했다. 2025년 1분기 수치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4월 채권금리의 급등을 고려하면 손실 완화는 단기에 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잠재 손실은 자산을 실제로 매각하지 않는 이상 손익계산서에 직접 반영되지 않는다. 그런데 예금주가 동요할 경우 유동성 위협으로 번질 수 있다. 플로리다 애틀랜틱대의 금융학 교수 레벨 콜은 “뉴스 하나만 터져도 2023년 3월 같은 은행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며 “지금껏 안 터진 게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콜은 특히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4.5%를 넘어서면 은행권의 손실이 심각해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5%에 달하면 은행 시스템 전반에 큰 충격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가 추정한 평가손 규모는 약 6000억~7000억 달러에 이른다.
많은 유가증권이 ‘만기 보유 목적’으로 분류돼 손익계산서에 반영되지는 않지만, 일단 매각이 시작되면 전체 포트폴리오가 시가 평가 대상이 된다. 콜은 이를 “은행 목에 걸린 바윗돌”이라 표현했다. 반면 매각 가능 증권은 회계상 손익에 반영되지만, 매각하지 않는 한 실적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SVB가 그랬다. 20억 달러 규모의 매각 손실을 발표한 지 단 3일 만에 폐쇄됐다.
콜은 “은행 시스템이 뱅크런에 취약한 구조로 다시 진입하고 있으며 단 하나의 불씨만으로 위기가 재점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팬데믹 시기 제로금리 상황에서 은행들은 단기 국채의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하고, 장기 국채, MBS(주택저당증권), 지방채 등 장기 채권에 2조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연준이 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1년 만에 기준금리를 0%대에서 4.5% 이상으로 끌어올리자 이들 자산의 가치가 급락했고, SVB와 퍼스트리퍼블릭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금융당국은 SVB 사태 이후 문제 인식은 개선됐지만, 자본 규제는 여전히 ‘평가손’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리스크를 피할 전략도 여전히 부족하다. 스탠퍼드대 아밋 세루 교수는 “다음 위기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가령 스태그플레이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고금리가 장기화되고 기술·벤처 산업에 노출된 대출기관의 신용 손실이 누적될 수 있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토르스텐 슬록은 “수익도 없고, 부채 감당 여력도 낮은 차입자들이 대출 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콜은 특히 100억~2000억 달러 자산 규모의 중견·지역은행을 지목했다. 이들은 FDIC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에 노출돼 있어 뱅크런에 취약하다. 콜은 경고했다. “이들이 보유한 유가증권에서 평가손이 발생하면 시가 평가가 불가피해지고, 규제 당국은 폐쇄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권은 지금 화약고 위에 앉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점화는 단 하나의 불씨로 충분합니다.”
/ 글 Greg McKenna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