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를 공언했던 테크기업들이 갈수록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20세기 화약경쟁의 핵심 자원이 질산이었듯, AI전쟁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 육지훈 기자 jihun.yook@fortunekorea.co.kr

‘넷제로(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를 공언했던 테크기업들이 되레 배출량을 늘리고 있다. 생성AI 성능을 높이려면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해서다. 이에 필요한 전력소모량을 감당하자면 화석연료 소비를 늘릴 수밖에 없다.
ESG 지표에 민감했던 테크기업들은 일찌감치 넷제로 목표를 밝힌 바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을 말했다. 데이터센터를 운용하는 국내기업 중에선 네이버가 2040년, 통신 3사가 2050년을 제시했다.
하지만 구글은 지난 7월 발표한 ‘2024 환경보고서’에서 지난해 1430만tCO2e(이산화탄소 환산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고 밝혔다. 2019년 대비 48%, 2022년 대비로는 13% 늘어난 수치다.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가 원인이었다. 구글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로 인한 탄소배출량은 2022년에 비해 37% 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로 배출량을 늘렸다. 5월 발표한 ‘2024 환경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데이터센터 운용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배출한 탄소(스코프3)가 2020년 대비 30.9% 늘었다고 밝혔다.
국내 통신3사의 탄소배출량도 늘고 있다. 지난해 SK텔레콤은 105만3142tCO2e, KT는 112만7476tCO2e, LG유플러스는 147만5232tCO2e, 그리고 네이버는 8만9505tCO2e의 탄소를 배출했다. 각각 전년 대비 2.15%, 5.13%, 5.46%, 13.46% 늘었다.
배출량이 가장 많은 LG유플러스 측은 데이터센터의 에너지효율 정도를 뜻하는 PUE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평촌메가센터의 PUE는 1.3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SK텔레콤과 KT는 각각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ESG보고서에서 “기지국 증설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아시아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인 ‘각 세종’을 연 네이버는 “넷제로 달성을 위해 탄소절감, 에너지 절감 측면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에 따르면, 각 세종의 PUE는 1.2대로, 국내 데이터센터 중 가장 수치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배출권 가격 “벌금 수준 될 것”
문제는 업계 전반의 AI 수요가 늘면서 이들도 데이터센터 수를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SK텔레콤 자회사 SK브로드밴드는 경기 양주시, 부산 등지에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개설할 예정이다. LG유플러스도 경기 파주시에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평촌메가센터보다 더 큰 규모(7만3712㎡)의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밝혔다. KT 역시 내년 경북 안동시 인근 경북도청신도시에 새 데이터센터를 연다.
센터를 당장 늘리지 않더라도 센터당 전력 소모량도 크게 늘고 있어 배출량을 줄이기 어렵다. 단위 서버당 데이터 처리 능력을 키우는 만큼 전력 소모량도 늘고 있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는 지난 4월 낸 보고서 ‘데이터센터: 클라우드에서 AI로 2차 호황기 진입’에서 “전통적 데이터센터의 전력 밀도는 4~6KW”이라며 “최근 짓고 있는 초거대규모 데이터센터는 60KW 이상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전력 밀도는 서버 캐비닛 하나당 전력소모량을 뜻한다.
네이버는 지난 6월 발표한 ‘2023 통합 보고서’에서 “비즈니스가 지속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향후 수년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와 함께 전력 사용에 따른 배출량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들이 탄소 배출량을 늘릴수록 이를 상쇄하기 위한 비용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각국 정부가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탄소 배출권 가격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기업이 탄소 배출권을 찾을수록 배출권의 시장 가격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1년 EU 집행위원회가 대형 차량에 대한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EU의 배출권 가격은 그해 150% 올랐다.
한국 정부 역시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기 위해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운용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보고서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탄소배출권 가격은 이행하지 못하면 내야만 하는 벌금의 성격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고, 그 강도(가격)는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