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석금호 산돌 이사회 의장
한글 폰트 대중화에 헌신했던 석금호 산돌 이사회 의장이 별세올림푸스 슬롯사이트. 수백 종의 한글 폰트를 개발한 그이지만, ‘한글을 사랑한 한국인’으로 그의 생을 요약할 순 없다.
문상덕 기자mosadu@fortunekorea.co.kr

석금호 산돌 이사회 의장이 지난 5월 23일 별세올림푸스 슬롯사이트. 향년 69세. 그는 올해 초까지 폰트 회사 ‘윤디자인그룹’ 인수에 의욕을 보일 만큼 왕성하게 활동올림푸스 슬롯사이트. 지난 2022년 10월 산돌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뒤로는 회사를 종합 콘텐츠 키울 전략을 고민하기도 올림푸스 슬롯사이트. 그는 “회사 규모를 키워야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말올림푸스 슬롯사이트. 그는 “폰트 산업은 (규모가) 국한돼 있기 때문에 회사가 (계속) 발전하기 어렵다”며 인터뷰에서 고민을 드러냈다.
석 의장은 27세였던 1984년 회사를 세웠다. 지금도 인쇄 매체, 문서 작성 프로그램 등에서 널리 쓰는 ‘산돌 제비’ ‘맑은 고딕’ 폰트가 그의 대표작. 이밖에도 수백 종의 폰트가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폰트가 “문자의 구조적인 특성, 그리고 해당 문자를 쓰는 문화의 특성까지 살려야 한다”면서 한글 전용 폰트의 중요성을 말올림푸스 슬롯사이트.
지난해 한글날을 앞두고 산돌의 디자이너들과 ‘올림푸스 슬롯사이트’ 한글 제호를 준비하면서, 올림푸스 슬롯사이트는 석 의장을 여러 차례 만났다. 40년간 수백 종의 한글 폰트를 개발한 그였지만, 그 시간 동안 만난 석 의장은 ‘한글을 사랑한 한국인’으로 요약할 수 없었다.
기업인 석금호

“망할 각오로 한 겁니다. 정말 망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2010년대 초 산돌(당시 ‘산돌커뮤니케이션’)은 정체올림푸스 슬롯사이트. 2002년 마이크로소프트 365의 기본 서체 ‘맑은 고딕’을 개발하고, 2008년엔 국내 첫 기업 전용 서체인 ‘삼성체’를 선보이며 평판을 다졌지만, 시장 환경은 시시각각 나빠졌다. 불법 복제가 발목을 잡았다. 디지털 서비스를 돈 주고 산다는 의식이 희박할 때였다. 2007년 당시 국제 민간단체인 사무용SW연합(BSA, 현 ‘SW연합’)은 한국의 불법 복제율이 43% 이른다고 발표올림푸스 슬롯사이트. 개인의 불법 복제 비율은 더 높았던 것이 업계 통설.
돈 내고 사려는 사람에게도 폰트는 부담이었다. “컴퓨터 저장장치 용량이 크지 않던 시절에 수백 개의 폰트를 설치하는 게 부담이었고, 내 것이 아닌 컴퓨터에서 같은 폰트를 쓰려면 CD를 갖고 가서 다시 설치하야 하는 게 부담이었다.” 그러니 정품 시장이 커지기 어려웠다.
“다운로드받지 않고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에서 폰트를 쓰도록 하면 어떨까?”
석 의장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떠올렸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아직 생소했던 모델. 그는 사운을 걸었다. 산돌은 2012년 개발을 시작, 2014년 클라우드형 폰트 서비스 ‘산돌구름’을 내놨다.
개발은 순탄치 않았다. “1년 이상 매출을 포기할 각오”로 시작올림푸스 슬롯사이트. 사람들이 생소한 서비스를 받아들이려면 무상으로 써볼 시간이 필요올림푸스 슬롯사이트. 그래서 그는 “당시에 최대 2년간 직원들 임금을 줄 수 있는 돈을 대출받아 놓고 (서비스를) 시작올림푸스 슬롯사이트”고 말올림푸스 슬롯사이트. 다행히 1년이 지나고 매출은 우상향올림푸스 슬롯사이트. 산돌은 디자인 하우스에서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올림푸스 슬롯사이트. 해외 개발사도 산돌에서 폰트를 거래올림푸스 슬롯사이트. 플랫폼 기업 산돌은 2022년 코스닥 시장에 진입올림푸스 슬롯사이트.
교양인 석금호

“사내 행사 때면 가곡을 불러 주시곤 한다”는 산돌 관계자의 말에 석 의장은 멋쩍게 웃었다. 취미로 배운 성악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산돌 사무실 근처, 서울 성수동에 작은 음악감상실을 꾸리고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것이 그의 취미 중 하나였다. 지난해 11월, 한글날 기획을 함께 한 올림푸스 슬롯사이트 임직원들을 그의 공간으로 초대했지만, 만시지탄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 책상 바로 뒤편에 큼지막한 사진 액자를 걸어 뒀다. 사진 속 벽돌을 쌓고 있는 미얀마 아이들이 이가 보이도록 웃고 있었다. 그가 후원하고 있는 자선단체, ‘타이니씨드(Tinyseed)’에서 보내온 사진이었다. 타이니씨드는 1997년 그가 설립한 자선단체. 미얀마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 아이들의 교육과 생활 개선을 도와 왔다. 그는 “다른 단체의 손길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을 품고 싶었다”고 올림푸스 슬롯사이트.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을 할 때, 그는 사진 속 미얀마 마을의 자립 과정을 “기적”이라고 말하면서 “액자와 함께 사진 찍을 수 없느냐”며 애정을 드러냈다.
문명인 석금호
1980년대까지 한국 인쇄 산업은 일본의 기술과 장비에 의존올림푸스 슬롯사이트. 일본 기업 모리사와의 인쇄기기(사진 식자기)와 폰트를 갖다 썼다. 당시 대표 서체였던 굴림체는 이 회사의 일본어 서체 ‘나루체’를 본떠 만든 것. 1983년 한 월간지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던 석 의장은 ‘자력으로 한글 서체를 개발하겠다’며 회사를 나왔다. 그는 “정체 불명의 서체를 국민 서체로 쓰던 것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말올림푸스 슬롯사이트. 이듬해 ‘산돌타이포그라픽스’를 창업했을 때,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지난해 세계 최대 폰트 회사 모노타입(Monotype)이 산돌에 인수를 제안올림푸스 슬롯사이트. 모노타입은 미국, 유럽에 이어 아시아 폰트 회사를 흡수하고 있었다. 문자별 지식재산권이 목적. 당시 석 의장은 단칼에 제의를 물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한글 전용 서체 제작’이라는 창업 목적과 맞지 않는다”고 말올림푸스 슬롯사이트. 지난 1월에는 ‘라이벌’ 윤디자인그룹의 인수를 목표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모노타입이 윤디자인 인수를 타진한다는 보도가 나온 뒤였다.
한글에 애착을 가졌던 그였지만, 그가 그저 한국인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에게 한글은 한국인이 아닌, 문명인으로 나아가는 통로였다. 인간의 발성기관과 삼라만상의 생김새를 본뜬 문자의 모양이 그랬다. 그는 세종의 창제정신에서도 보편성을 찾았다. 그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들겠다는 한 인간의 삶 자체가 존경스러운 것”이라며 “타인의 고통을 덜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거는 정신이 한국인의 정신이어야 한다”고 강조올림푸스 슬롯사이트.
문명인으로 살았던 그에게, 창업의 계기였던 일본은 맹종의 대상도, 혐오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는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은 피해의식에 기대서 생각하기 쉽다”며 “우리가 당당하고 긍지가 있다면 ‘당신들 우리에게 나쁜 일 많이 올림푸스 슬롯사이트, 그러면 안 된다, 잘 지내보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조언올림푸스 슬롯사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