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유·가스 업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와 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비용 급등, 투자 위축, 구조적 침체에 직면했다.
![미국 석유슬롯 사이트가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사진=셔터스톡]](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9/50065_43619_1955.jpg)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석유업계를 공개적으로 응원하고 있지만, 정작 업계의 분위기는 축제와 거리가 멀다. 미 댈러스 연준이 9월 중순 텍사스, 루이지애나 북부, 뉴멕시코 남부의 석유·가스 기업 13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3분기 ‘에너지 서베이’에 따르면 업계 활동은 다시 위축됐다. 급등하는 비용, 정책 불확실성, 신규 관세 혼란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 사업활동지수는 –6.5를 기록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였다. 기업전망지수는 –6.4에서 –17.6으로 급락했다. 응답 기업의 44% 이상이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고 답했다.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은 줄었고, 시추·장비 임차 등 거의 모든 비용이 치솟았다.
경영진들은 익명 코멘트에서 거침없이 불만을 토로했다. 한 임원은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석유업계 전반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탈출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임원은 “철강·알루미늄에 50% 관세가 붙으면서 사업 비용이 크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탐사·개발 기업의 탐사비용은 이번 분기에 두 배로 뛰었고, 임차 운영비도 급등했다. 유전 서비스 업체들은 여전히 적자 폭이 깊다며 “산업이 피를 흘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특히 강관·중장비·수입 부품 비용 상승으로 인해 시추가 ‘경제성이 없는 사업’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서비스 기업 임원은 “관세로 생산 비용이 계속 오르는 동시에 최종 소비자의 가격 인하 압박까지 겹쳐 고통이 크다”고 말했다.
가격 약세와 비용 급등은 자본 지출을 억눌렀다. 설문에 따르면 자본지출지수는 –3.0에서 –11.6으로 급락했다. 한 기업은 “규제 정책의 불확실성이 투자를 막고 있다”며 “정부가 ‘펜 한 번 휘두르는 리스크(stroke of pen risk)’를 쥔 상황에서 에너지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가격 전망도 어둡다. 응답자들은 올해 말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을 배럴당 63달러로 내다봤다. 2년 뒤엔 69달러, 5년 뒤에도 77달러 수준으로 예상됐다. 독립 기업들은 “이 가격대는 신규 시추를 정당화하기엔 너무 낮다”고 토로했다.
10년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의 엔진으로 불리던 미국 셰일 산업은 지금 업계 내부에서조차 “망가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생에너지 세액공제를 폐지하고 있음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한 임원은 “자본 공급 붕괴로 메이저 기업들의 합병이 가속화됐고, 한때 셰일 혁명을 이끌던 독립·창업 기업들이 밀려났다”며 “이제는 소수의 거대 기업이 지배하지만, 그 대가로 수많은 일자리와 혁신적·도전적 문화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임원은 “지금 재생에너지 산업을 향한 칼날은 3년 반 뒤 다시 전통 에너지 산업을 향해 돌아올 것”이라며 메탄 배출 규제와 인허가 전쟁이 재개될 위험성을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시추 확대가 미국 에너지 르네상스를 이끌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정책이 비용을 높이고 투자를 막으며 업계는 손을 놓고 있다. 한 임원은 “석유산업은 또다시 인력을 잃게 될 것”이라며 “시추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글 Eva Roytburg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