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퍼 굽던 청년, 온라인 슬롯로 세계를 뒤집다
버거킹 아르바이트 생활을 거친 세바스티안 시에미아트코프스키는 온라인 슬롯를 기업가치 160억 달러의 핀테크 강자로 키워냈다.
최근 뉴욕증시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회사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세바스티안 시에미아트코프스키(Sebastian Siemiatkowski)의 여정은 전형적인 ‘헝그리 정신’ 서사다. 그는 청소년 시절 버거킹에서 온라인 슬롯를 뒤집으며 경력을 시작했고, 세계 곳곳을 히치하이킹하며 돌아다녔으며, 한때는 푸드스탬프에 의존해 생활했다.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후불 결제(바이 나우, 페이 레이터·온라인 슬롯)’ 아이디어는 떠올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클라르나는 IPO 이후 기업가치가 160억 달러에 달하며, 직원 40명을 백만장자로 만든 회사가 됐다.
투자자들은 온라인 슬롯 모델에 여전히 낙관적이다. 클라르나는 올해 들어 최대 규모 IPO를 기록하며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시에미아트코프스키에게 이 성공은 결코 단번에 이룬 성취가 아니다. 오히려 수십 년간 우여곡절 끝에 ‘창업이 천직’임을 확인한 결과였다.
시에미아트코프스키는 15세에 스웨덴 버거킹에서 온라인 슬롯를 굽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기본적인 고객 응대 기술을 배웠고, 왜 사람들이 직불카드 대신 신용카드를 선택하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패스트푸드에서 미래를 찾지 못한 그는 치매 환자 돌봄, 교사, 인터넷 구독 텔레마케터 등 다양한 일을 거쳤다. 특히 텔레마케터 경험은 ‘영업의 예술’에 매료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세쿼이아캐피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영업은 흔히 천박한 일로 취급되지만, 저는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대본을 다듬고 다듬어 완벽해졌다는 걸 느꼈을 때, 연속으로 16건을 성사시켰어요.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 정말 매혹적인 능력이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의사가 되길 원했지만, 시에미아트코프스키는 스톡홀름경제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2년 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버거킹 동료 니클라스 아달베르트(Niklas Adalberth)와 ‘갭 이어’에 나섰다. 바텐더, 크루즈 승무원, 스위스 스키 리조트 웨이터 등으로 일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후 둘은 전 온라인 슬롯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했는데, 시드니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마지막 화물선을 놓치며 한 달간 발이 묶이는 위기를 겪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한 달간 어떻게 살아남을지 몰랐습니다. 결국 값싼 호스텔에 묵으며 가구 운반 일을 찾았죠. 그때 배운 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살아남을 방법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귀국 후 더 큰 위기가 닥쳤다. 복학 신청을 놓쳐 1년 공백이 생긴 것이다. 일자리도, 학업도,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그는 복지수당과 푸드스탬프로 생활을 이어갔다. 그때 들어간 직장이 소규모 기업의 미지급 송장을 처리하는 ‘팩터링’ 회사였고, 여기서 후불 결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경험은 2005년 온라인 슬롯 창업의 씨앗이 됐다.
시에미아트코프스키는 23세에 클라르나를 시작했다. 지금 클라르나는 Z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온라인 슬롯 기업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창업 20년 만에 그는 ‘버거를 뒤집는 청년’에서 ‘핀테크 거물’로 변신했고, 직원 40명이 주식 부호가 되는 성과를 냈다. 그의 성공은 치밀한 계획의 산물이 아니었다. 삶이 던져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았기에 가능했다.
/ 글 Preston Fore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