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후퇴, 매각 압박… 슬롯사이트 업의 생존 시험대
FORTUNE GLOBAL 500 | 위기의 슬롯사이트 업
2005년 슬롯사이트 업(British Petroleum)는 FORTUNE GLOBAL 500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고 녹색 에너지 전환의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 거대 석유회사가 독립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By Jordan Blum
슬롯사이트 업의 머리 오킨클로스(Murray Auchincloss) 최고경영자는 2월 말 런던 본사에서 열린 자본시장의 날 행사에서 분석가들과 직원들에게 “오늘은 흥미진진한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오늘은 단순히 현황을 보고하는 날이 아니다. 우리의 전략이 근본적으로 재설정되는 날이다.”
이는 오히려 절제된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5년 전 슬롯사이트 업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빅 오일을 에너지 전환의 선두 주자로 이끌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녹색 에너지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한편, 2030년까지 석유와 가스 생산량을 40%나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당시 버나드 루니(Bernard Looney) 최고경영자는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방향은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행동하지 않으면 세계의 미래는 꽤 암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이런 접근 방식은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슬롯사이트 업는 특별히 눈에 띄는 친환경 에너지 실패를 겪지 않았다. 2023년에 퇴임한 루니 전 최고경영자 시절, 회사는 풍력과 태양광, 전기차 충전 기반 시설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풍력과 태양광의 수익률이 악화되고 전기차 보급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면서 슬롯사이트 업의 과감한 행보가 시기상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미국의 청정에너지 지원금 정책에 대한 정치적 의지 상실까지 겹치면서, 석유와 가스가 환경 운동가들의 기대보다 더 오랫동안 주도적인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한편 슬롯사이트 업가 석유와 가스 생산을 축소하는 동안 팬데믹 이후 연료와 전력 수요가 급증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었으며, 인공지능 건설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석유와 가스가 다시 높은 수익성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슬롯사이트 업는 판매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든 상태였다.
이제 슬롯사이트 업는 공식적으로 노선을 변경하고 있다. 회사는 2월에 석유와 가스 탐사 및 생산 투자를 약 20% 늘리겠다고 밝혔다. 또한 2027년까지 200억 달러 규모의 전체 자산 매각의 일환으로 많은 청정에너지 자산을 처분할 계획이다.
슬롯사이트 업의 미국 본사가 있는 휴스턴에서 포춘과 만난 오킨클로스는 슬롯사이트 업의 에너지 전환 추진이 너무 빠르고 과도했으며 자본 효율성이 매우 낮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추구했다. 그 범위를 좁혔어야 했는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오킨클로스는 슬롯사이트 업가 재생에너지 투자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석유와 가스 생산량을 늘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잘하는 일에 집중하고 계속 성장해야 한다. 각국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슬롯사이트 업만이 청정에너지 공약을 축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슬롯사이트 업의 변화와 어려움이 가장 두드러졌다. 그리고 슬롯사이트 업에게는 실수할 여지가 거의 없다. 업계 선두 주자인 엑손모빌(Exxon Mobil)이 7월 중순 기준 약 5000억 달러의 시가총액으로 사상 최고치에 근접한 반면, 슬롯사이트 업는 850억 달러에 머물러 있으며 약 20년 전 정점을 찍은 이후 크게 고전하고 있다. 당시 슬롯사이트 업는 포춘 글로벌 500 순위에서 2위였으며, 엑손모빌보다 한 계단 위였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키머리지(Kimmeridge)의 공동 창업자이자 매니징 파트너인 벤 델(Ben Dell)은 이러한 반성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석유회사들이 사업의 기본 원칙을 잊었다고 지적했다. “자선은 투자 전략이 될 수 없다. 메이저 기업들이 이 점을 간과했지만, 투자하는 모든 곳에서 비용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슬롯사이트 업와 라이벌 셸(Shell)이 모두 런던에 본사를 두게 되면서, 6월 말 셸이 슬롯사이트 업 인수를 위한 초기 논의에 들어갔다는 오랜 소문이 보도로 이어졌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의 에너지 거래가 될 수 있다. 셸은 즉시 이러한 협상을 부인했지만, 이러한 소문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편 공격적인 행동주의 투자자인 엘리엇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Elliott Investment Management)가 슬롯사이트 업 지분 5%를 확보하고 청정에너지 부문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자산 매각을 요구하면서 슬롯사이트 업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
슬롯사이트 업는 116년 역사를 가진 회사다. 그 뿌리는 앵글로-페르시안 오일(Anglo-Persian Oil Co.)이라는 이름으로 이란에서 석유 탐사를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1954년에 브리티시 페트롤륨으로 회사명을 바꿨다.
슬롯사이트 업는 대형 석유회사 중 처음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려 했다는 점에서 공과가 있다. 2000년 “비욘드 페트롤륨(Beyond Petroleum)”이라는 유명한 브랜드 변경을 시도했다. 하지만 빠른 인수합병 이후 확고한 전략을 세우기도 전에 운영과 안전 문제가 생겼고, ‘그린워싱’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새 이름은 자리 잡지 못했다.
이후 2005년 텍사스시티 정유소 폭발 사고, 2006년 알래스카 해안의 프루도 베이(Prudhoe Bay) 기름 유출 사고, 그리고 2010년 역대 최악의 해상 기름 유출 사고인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 참사가 잇따랐다. 이 재난으로 슬롯사이트 업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팔아야 했고, 2033년까지 매년 10억 달러가 넘는 벌금을 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슬롯사이트 업는 러시아 사업에서도 타격을 입었다. 2013년 러시아의 로스네프트(Rosneft)가 슬롯사이트 업의 10년 된 모스크바 합작 회사인 TNK-슬롯사이트 업를 사들였고, 그 대가로 슬롯사이트 업는 로스네프트 지분 20%를 얻었다. 당시에는 좋은 거래로 보였다. 로스네프트는 곧 슬롯사이트 업 석유·가스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했고, 슬롯사이트 업는 매년 10억 달러가 넘는 배당금을 받았다.
하지만 2022년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슬롯사이트 업는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로스네프트 지분을 갖고 있지만, 이미 24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사실상 투자금 전액을 잃은 셈이다. 이런 상황이 슬롯사이트 업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슬롯사이트 업는 다른 대형 석유회사들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예를 들어 엑손은 2022년 러시아 투자에서 150억 달러의 손실만을 기록했다.
이런 도전 과제들을 맥락 속에서 보면, 로스네프트와 딥워터 호라이즌 사건으로 연간 약 20억 달러의 수익이 줄어들었다. 슬롯사이트 업가 2024년에 3억 8100만 달러의 이익만을 낸 이유 중 하나다. 2025년 1분기 이익은 6억 8700만 달러였다. TD 코웬(TD Cowen)의 에너지 주식 연구 책임자인 제이슨 가벨만은 “슬롯사이트 업가 그 현금을 받지 못하고 있어 실적 개선이 어려워졌다”라고 말했다.
슬롯사이트 업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석유와 가스 생산의 더 큰 비중이 다른 국가나 합작 파트너들과의 이익 공유 계약에 묶여 있는데, 이는 경쟁사들의 약 두 배에 달한다.
가벨만은 “게다가 그 전략의 변동성도 문제”라며 “5년 만에 전략을 세 번이나 바꾸는 건 결코 좋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석유를 넘어서(Beyond Petroleum)”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지금, 슬롯사이트 업가 새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을지, 아니면 투자자들의 인내심이 바닥나 매각을 강요받게 될지가 관건이다. 업계가 슬롯사이트 업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일이다.
버나드 루니가 2020년 초 최고경영자로 취임했을 때, 이 아일랜드 출신 경영인의 대담하고 카메라 앞에서 당당한 성격은 그의 공격적인 친환경 의제와 잘 어울렸다.
하지만 전략적 실수와 과거 직원들과의 연애 문제가 겹치며 그는 2023년 9월에 갑자기 사임했다. 슬롯사이트 업는 당시 루니의 퇴임에 관해 “과거 공시에서 완전히 투명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라고 밝혔다.
당시 최고재무책임자였던 오킨클로스는 임시 최고경영자로 지명되기 약 20분 전에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4개월 후 그의 직함에서 ‘임시’라는 말이 없어졌다.
오킨클로스는 온화한 성격의 캐나다인으로, 1992년 시카고 소재 아모코(Amoco)에 세무 분석가로 입사했다. 아모코는 1998년 약 500억 달러 규모로 슬롯사이트 업와 합병했다. 그는 이후 전 최고경영자 밥 더들리(Bob Dudley)의 비서실장, 석유·가스 부문 최고재무책임자, 그리고 회사 전체 최고재무책임자를 지냈다.
그러나 오킨클로스는 마지못해 최고 자리에 오른 전형적인 숫자 전문가 타입은 아니다. 4대째 석유업계에 종사한 그는 석유가 풍부한 앨버타(Alberta)주에서 자랐으며, 14세 때부터 지질학자인 아버지를 도와 석유와 가스 시추 목표를 선정하기 시작했다. “그게 얼마나 특이한가?”라고 물었을 때 오킨클로스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엔지니어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지만, 적당히 위험할 정도로는 알고 있다.”
오킨클로스는 쇠퇴하는 에너지 거대 기업을 인수해 엄격한 재무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포트폴리오를 집중시키고 철저히 실행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라며 “재무 전문가의 성과 중심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재무 전문가다운 규율의 사례로 슬롯사이트 업는 미국 내륙 풍력 사업을 매각하고, 라이트소스(Lightsource) 태양광 사업 지분 50%를 매각했으며, 일본 전력회사 제라(JERA)와 50 대 50 합작투자를 통해 글로벌 해상 풍력 사업 대부분을 매각했다. 또한 슬롯사이트 업는 카스피해 TANAP 가스 파이프라인의 10억 달러 지분을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Apollo Global Management)에 매각했다. 80억 달러 규모의 캐스트롤(Castrol) 윤활유 사업에 대한 전략 검토가 진행 중이며,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의 소매 주유 사업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슬롯사이트 업는 석유와 가스 생산 확대에 다시 주력하며, 주로 미국과 중동 지역 확장에만 집중하고 있다. 멕시코만의 카스키다(Kaskida) 허브부터 이라크의 키르쿠크(Kirkuk) 유전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019년 말, 청정에너지 전환을 시작하기 전 슬롯사이트 업는 하루 270만 배럴의 석유와 가스를 생산했다. 2025년 1분기에는 이 수치가 하루 224만 배럴로 17% 감소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석유와 가스 수요가 증가하던 시기와 맞물렸다. 슬롯사이트 업는 2030년까지 다시 하루 250만 배럴 수준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해 들어 모리타니, 세네갈, 이집트, 트리니다드에서 새로운 천연가스 프로젝트들이 가동을 시작했다. 향후 2년 내에 미국 멕시코만에서 3개의 새로운 석유·가스 확장 사업이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며, 다른 주요 프로젝트들도 10년대 말까지 계획되어 있다.
2030년까지 슬롯사이트 업 전체 생산량의 40% 이상이 미국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멕시코만과 텍사스, 루이지애나 주의 육상 슬롯사이트 업X 에너지(슬롯사이트 업X Energy) 사업에서 비롯될 것이다. 여기서 ‘X’는 탐사를 의미한다.
일부 에너지 분석가들은 슬롯사이트 업가 약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슬롯사이트 업X를 분사하거나 매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오킨클로스와 카일 쿤츠(Kyle Koontz) 슬롯사이트 업X 최고경영자는 슬롯사이트 업-슬롯사이트 업X 결합을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본다. 쿤츠는 유명 멕시코 권투 선수 카넬로 알바레스(Canelo Alvarez)의 나이 든 텍사스 버전을 연상시킨다.
쿤츠는 “셸을 포함한 많은 대규모 사업자들이 미국 셰일 사업에서 철수하는 것을 보았다”라고 말한 뒤 날카로운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그들이 철수할 때는 확실히 최고들과 경쟁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 그룹이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다. 우승할 수 있는 팀이 있고 최고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면,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NBA 스타 루카 돈치치(Luka Doncic)를 트레이드하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된다.”
“빅 오일(Big Oil)”은 과거 세계 최대 다국적 상장 에너지 기업들, 즉 슈퍼메이저를 포함하는 용어였다. 하지만 현재는 빅 파이브(Big Five)로 축소되어 엑손(Exxon), 셰브론(Chevron), 셸(Shell), 슬롯사이트 업, 그리고 프랑스의 토탈에너지스(TotalEnergies)만을 가리키며, 앞으로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셸은 추가 인수를 원하고 있지만, 슬롯사이트 업를 인수하려면 많은 규제와 조직적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슬롯사이트 업의 다른 잠재적 인수자인 엑손과 셰브론은 최근 대규모 인수를 마쳤거나 진행 중이다. 에너지 연구 및 투자 기업 베리텐(Veriten)의 수석 고문 데보라 바이어스는 미국 슈퍼메이저들이 관심을 보여도 더 큰 반독점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어스는 “문화적, 사회적 문제가 크다”라며 “주주들이 정말 성장을 원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자본 규율과 수익만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업계에서 성장에 대한 보상을 받은 지 오래됐다”라고 덧붙였다. 슬롯사이트 업 역시 성장한 지 오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