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5000만 년 전 물고기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미스터리

쥐라기 어류 타르시스, 오징어 조상 삼키려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4200점 전수조사 통해 어류의 사인 규명

2025-07-07육지훈 기자
독일 바이에른 솔른호펜 지역에서 출토된 CM4876 표본은 입과 아가미에 벨렘나이트(Belemnite)가 걸린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화석이다. 앞뒷면 조각을 하나로 접합해 복원한 것이다. [사진=M. Ebert]

약 1억 5000만 년 전 쥐라기 바다에서 몸집보다 큰 오징어를삼키려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한 물고기의 흔적이 화석으로 확인됐다. 4일(현지 시간) 독일 뮌헨 대학교연구팀에 따르면,화석 분석 도중 오징어과의조상 벨렘나이트(Belemnite)가 고대 어류 타르시스(Tharsis)의 입과 아가미에 걸린희귀 사례를 확인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는 물고기가먹이를 포식하는 것이 아니라사고사에 가깝다.

화석이 출토된 곳은 독일 졸렌호펜 석회암층(Solenhofen Plattenkalk)이다. 시조새를 비롯해 다양한 화석이 발굴됐으며, 연부 조직까지 잘 보존된 표본이 다수 나타난지층으로 유명하다. 쥐라기 후기 당시 졸렌호펜은염도가 높고 산소가 부족한 석호였기 때문에, 바닥에 가라앉은 사체가 부패하지 않고 그대로 매몰될 수 있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역시 졸렌호펜 지층에서 흔히 발견되는 어류 가운데 하나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작은 이빨로 동물성 플랑크톤을 훑어 먹는 미세 포식 어류(Micro Predatory fish)다. 반면 오징어와 비슷한 두족류 벨렘나이트는 석호에 살지 않았고, 죽은 개체가 외해에서 떠밀려 온 경우에만 가끔 화석으로 남았다. 몸집이 비슷한 벨렘나이트를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가 사냥했다는 가설은 학계에서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에두 종이 엉킨 화석은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발견된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화석 4200여 점을 전수 조사하다가 기이한 표본들을 포착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와벨렘나이트가 얽힌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연구 책임자 마르티나 쾰블-에버트 박사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화석이 너무 흔해 대부분 연구자가 몇 점의 잘 보존된 표본만 살펴왔다”며 “우리는 방대한 표본을 통계적으로 분석했기에 이런 희귀 사례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독일 바이에른 솔른호펜 군도에서 발견된, 입과 아가미에 벨럼나이트가 걸린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화석 표본. [사진=J. Geppert,S. Schäfer / Jurassic fish choking on floating belemnites]

연구팀은 비극의 원인을 당시 해양 환경에서 찾았다. 바다를 떠다니던 벨렘나이트 사체에는 조류와 세균이 빠르게 달라붙었을 것으로 보인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부패한 유기물이나 조류가 묻은 부유물을 빨아들여 먹는 습성이 있어, 조류로 뒤덮인 벨렘나이트를 먹잇감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쾰블-에버트 박사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에게 조류가 잔뜩 붙은 벨렘나이트는 냄새와 맛이 나는 먹이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극은 벨렘나이트 특유의 총알 모양에서 비롯됐다. 타르시스는 뾰족한 끝을 입으로 빨아들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몸통이 갑자기 두꺼워지는 구조 탓에 더 이상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했다. 물고기는 목이 막히자 벨렘나이트를 아가미로 밀어내려 애썼지만 결국 아가미가 막혀 몇 시간 안에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한 것으로 추정된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먹잇감으로 착각한 물체 때문에 목숨을 잃은 셈이다. 연구팀은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의 사망사례가 오늘날 해양 생물이 조류 냄새에 이끌려 플라스틱 쓰레기를 섭취하는 현상과 닮았다고 지적했다. 1억 5000만 년 전 화석이 현대 해양 생태계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5월 8일 게재됐다.

/ 육지훈 기자 editor@popsc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