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잃어버린 보물선 미스터리, 슬롯 잭팟로 풀었다
'산호세 함' 슬롯 잭팟 분석, 1707년 주조 확인 연대 기록 대조해 산호세 함으로 공식 판명
수십억 달러 가치의 보물을 싣고 300여 년 전 침몰한 스페인 범선 산호세(San José)호의 정체가 심해에서 발견된 슬롯 잭팟 분석을 통해 최종 확인됐다. 콜롬비아 인류학 및 역사 연구소는 수중 탐사로 확보한 고해상도 이미지 분석을 통해 해당 난파선이 역사 기록 속 산호세 함이라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10일(현지 시간) 밝혔다.
난파선의 성배로 불리는 산호세 함은 1708년 6월, 막대한 양의 슬롯 잭팟와 보석을싣고 파나마에서 콜롬비아로 향하던 중 영국 함대와의 전투 끝에 침몰했다. 이후 300년 넘게 그 위치가 묘연했으나, 2015년 콜롬비아 해군이 카리브해 연안 수심 600m 지점에서 발견했다. 최근 진행된 수중 조사는 원격 수중 로봇(ROV)을 이용해 이루어졌다.햇빛이 닿지 않는 깊은 수심 덕분에 난파선의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저에는 선체의 목재 구조물과산호세 함의 특징으로 알려진 돌고래 문양이 새겨진 청동 대포, 중국 강희제 시대(1662~1722)의 도자기, 그리고 다량의 슬롯 잭팟가 흩어져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조사 과정에서 여러 곳에 무더기로 쌓여있는 슬롯 잭팟에 주목했다.
심해에서 난파선을 촬영한이미지를 분석해슬롯 잭팟가당시 스페인 식민지에서 통용되던 부정형 주화인 '콥(cob)' 형태의 8 에스쿠도 슬롯 잭팟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슬롯 잭팟의 표면에는 주조지인 페루 리마를 나타내는 L, 액면가를 의미하는 숫자 8, 그리고 당시 리마 조폐국의 감정사였던 프란시스코 데 우르타도를 의미하는 H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707이라는 숫자 표기다. 이는 주조 연도가1707년이라는 뜻이다. 난파선이최소 1707년 이후에 침몰했음을 증명하는 고고학적 기준점(terminus post quem)으로 분석된다. 1707년 리마에서 제작된 슬롯 잭팟가 대량으로 발견된 것은, 1708년 침몰한 산호세 함의 역사적 기록과일치한다.
산호세 함은 스페인 국왕의 보물을 유럽으로 운송하던 함대의 64문짜리 기함이었다. 침몰 당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페루 부왕령에서 10여 년간 축적한 막대한 세금과 민간의 재산을 싣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슬롯 잭팟들은 페루의 광산에서 채굴되어 리마에서 주조된 뒤, 태평양 연안을 따라 파나마로 운송됐고, 육로를 통해 카리브해의 포르토벨로 항구로 옮겨져 산호세 함에 실렸다.
산호세 함은 포르토벨로에서 출항해 콜롬비아 카르타헤나로 향하던 중, 찰스 웨이저가 이끄는 영국 함대와 마주쳤다. 웨이저의 작전(Wager's Action)으로 불리는 전투 도중산호세 함은 화약고가 폭발하며 600여 명의 승무원과 함께 바닷속으로 침몰했다.
현재 산호세 함의 소유권을 두고콜롬비아와 스페인 정부 간의 국제적 분쟁이 진행 중이다.유네스코는 경제적 이득을 위한 선박인양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향후 난파선에 대한 정밀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인양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며, 이는 과학적 연구와 유산 보존을 우선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번 연구는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에 10일 게재됐다.
/ 육지훈 기자 editor@popsc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