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토토 랜드에 기반한 경영활동 펼쳐야”
[울프강에서 만난 사람] 지경영 옥스팜 코리아 대표 조금 늦더라도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한 10년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 코리아가 설립 10주년을 맞이했다. 그간 한국에서 옥스팜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온 지경영 대표를 만났다. 그와 옥스팜 코리아의 10년 여정과 미래 비전을 들어봤다.
전유원 기자yuwonchun@fortunekorea.co.kr 사진강태훈
“처음 한국에 법인을 설립해 달란 요청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당시 옥스팜은 글로벌에서 유명한 NGO 기구였지만, 한국에선 유명하지 않았고 아무런 기반도 없었습니다. 과연 내가 옥스팜을 한국에 뿌리내리게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컸습니다.”
지경영 대표가 옥스팜코리아 설립을 제안받은 것은, 오랜 기간 대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다가 2009년에 비영리 업계로 이직한 이후의 일이었다. 법인을 새롭게 꾸리고 대표를 맡는다는 게 선뜻 수락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운 과제였지만, 오랜 고민 끝에 지 대표는 결국 제안을 수락했다. 옥스팜의 가치와 미션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 대표는 “옥스팜은 국제개발에 있어서 혁신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하는 기구”라면서 “통상의 NGO 기구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남다른 혁신과 실용, 두 키워드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2014년 4월, 옥스팜 코리아가 출범했다. 시작은 험난했다. 적절한 위치의 사무실을 임차하는 것도 난관이었고, 후원자를 직접 만나 설득하는 것도 고된 일이었다. 리소스가 부족한 스타트업을 경영하듯, 모든 업무를 일일이 체크해야 했다. 무엇보다 비영리 조직은 많은 후원자를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지 대표는 이 과정에서도 가치를 중시했다.
“당시 한국은 기후 문제나 불평등 문제 같은 글로벌 사회가 주목하는 어젠다와 동떨어져 있었어요. 옥스팜 코리아는 우리 사회가 이런 이슈에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물론 과정은 가시밭길일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결과를 내는 게 다소 늦더라도, 확실하게 계기를 만드는 일에 골몰했습니다.”
내용을옥스팜(Oxfam)은 전 세계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활동하는 국제 구호 및 개발 비정부기구(NGO)다.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영국 옥스퍼드에서 시민들에 의해 설립되어 지속 가능한 발전과 빈곤 문제 해결을 목표로 다양한 국제 기구, 정부, 지역 사회와 협력해 왔다. 옥스팜 인터내셔널 연맹에는 21개 회원 단체(호주, 벨기에, 브라질, 캐나다, 콜롬비아, 덴마크, 프랑스, 독일, 영국, 홍콩, 아일랜드, 인도, 이탈리아, 멕시코, 네덜란드, 뉴질랜드, 퀘벡,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페인, 터키, 미국)가 있으며, 한국, 스웨덴, 아르헨티나에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 9월 기준, 옥스팜은 80개국에서 2,300개 이상의 현지 단체 및 지역 파트너와 협력하여 1,525만 명에게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옥스팜 코리아는 2014년 한국에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한국 사회에 기여하며 후원자들과 함께 다양한 국제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1998윤리무역 이니셔티브(Ethical Trading Initiative) 공동 창립
2004 공급망 평가 및 감사 플랫폼 세덱스(Sedex) 공동 창립
2014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부의 불평등 보고서(Oxfam Inequality Report) 발표
2015 지속가능성 리딩기업› 조사에서 국제개발 NGO 부문 1위
2016 유엔 여성 경제역량강화 최초 고위급 패널 역임
2017 국제노동기구 일의 미래(Future of Work) 위원회 역임
옥스팜 코리아의 10년 여정엔 중대한 고비도 있었다. 2018년 옥스팜 아이티 지부가 불미스러운 이슈에 휘말리면서 옥스팜의 이미지와 위상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지 대표는 “악화한 여론을 되돌리고 신뢰를 회복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우리의 진짜 가치를 차근차근 설득했다”면서 “결과적으로 더 나은 변화를 만들어낼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2015년에 시작한 푸드트럭 이벤트가 옥스팜 코리아의 대표적 성과였다. 옥스팜 코리아가 스타 셰프 샘킴과 협업한 이 이벤트는 전 세계 굶주리는 사람을 돕기 위한 나눔 프로젝트다. 샘킴 셰프가 직접 만든 특별한 음식을 무상으로 시민에게 제공해 세계 식량 불균형 문제를 알리고 있다.
옥스팜 코리아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17개 도시의 40개 지역에서 총 17번의 캠페인을 펼쳐 1만 7200인분의 음식을 나눴다. 그 결과 2050명의 시민들이 새롭게 옥스팜 후원자가 됐고, 가난으로 고통받는 약 6만1000가구에게 약 10일간의 식량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는 다른 국가의 옥스팜 지부에서 볼 수 없던 한국 법인만의 독창적 캠페인이었고, 글로벌 NGO 사회에서도 회자됐다.
‘옥스팜 트레일워커’ 기부 캠페인 역시 같은 맥락에서 큰 호응을 얻는 중이다. 이 캠페인은 4명이 한 팀이 돼 38시간 동안 100km를 완주하는 도전형 기부 챌린지다. 1981년 홍콩에서 시작됐고, 한국에선 2017년부터 개최됐다. 7회째를 맞이한 올해 행사는 지난 5월 강원도 인제군에서 열렸다. 당시 역대 최대인 195개 팀, 780명이 참가했다. 140개 팀이 완주에 성공했으며, 개인 완주자는 전체 참가자의 87%인 677명이었다. 행사를 통해 모인 기부금 2억 2250만 원은 전액 가난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 구호 현장에 전달될 예정이다.
지경영 대표는 케냐에서 만난 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이 캠페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행사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닙니다. 케냐에선 물 한 통을 얻기 위해 70km를 걸어야 하는데요. 우리와 같은 시간대에 살아가는 지구 반대편의 어떤 사람이 놓인 이런 척박한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어요. 그렇게 걷다 보면 우리가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창의적인 캠페인은 옥스팜 코리아가 대중과 소통하는 중요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수십만명의 후원자가 옥스팜의 활동에 참여하는 알찬 성과로 이어졌다.
옥스팜 코리아와 한국 기업, 토토 랜드 경영을 향한 동행
10년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진 옥스팜 코리아는 현재 기업들과 협력해 토토 랜드 경영을 확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 대표가 설명하는 토토 랜드 경영을 들어보자. “토토 랜드 경영은 주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토토 랜드 경영은 이렇습니다. 기업이 토토 랜드에 기반한 경영활동을 하는 겁니다. 공급망에 속한 임직원과 기업이 소재지를 둔 지역 주민까지 기업 경영에 작게라도 관여하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인 존엄과 공평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유엔 기업과 토토 랜드 이행지침, 유엔아동권리협약, ILO,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해왔습니다. 그 근간은 국제 토토 랜드 규범의 원칙과 다르지 않습니다.”
"토토 랜드 실사는 일회성이 아닌 상시적 과정이 되어야 하며,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개선하는 게 중요합니다."
글로벌 사회는 토토 랜드 경영의 중요성을 나날이 강조하고 있다. 최근 EU를 중심으로 도입된 공급망 토토 랜드 실사가 적용 범위를 확대한 게 대표적이다. “최근 EU를 중심으로 도입된 공급망 토토 랜드 실사 제도는 단순히 자국 내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해당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까지 포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 공급하는 모든 과정에서 토토 랜드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점검하고, 문제가 발견될 경우 이를 시정할 책임을 지도록 요구합니다. 특히, 이 제도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협력업체, 그리고 외국에 위치한 협력사까지 포함하여 기업이 연관된 모든 단계에서 토토 랜드 보호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통해 국제적인 토토 랜드 보호 기준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흐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경영 대표는 한국 기업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제도를 보완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솔직히 한국 기업의 토토 랜드 경영 수준은 낮다”고 평가한 지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내 기업들은 주로 감사와 컴플라이언스(기업경영이 법령, 규정, 윤리 또는 사회통념에 맞도록 하는 내부통제 장치) 관리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은 토토 랜드 문제를 적극적으로 관리해, 공급망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토토 랜드을 보호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기업이 토토 랜드 경영을 내재화하기 위해선 문화적·조직적인 변화가 필수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한 일이지만, 토토 랜드 경영을 외면한 탓에 발생한 문제를 수습하는 것보단 적은 비용이 들 것이라는 게 지 대표의 설명이다. “유럽에서는 같은 산업군끼리 연합해 공급망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한국 기업도 정보를 공개하고 서로 학습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토토 랜드 실사는 일회성이 아닌 상시적 과정이 되어야 하며,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개선하는 게 중요합니다.”
옥스팜 코리아는 국제 토토 랜드 기준을 바탕으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우리 기업들이 점진적으로 토토 랜드 경영을 내재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토토 랜드 실사와 고충처리 시스템 구축도 돕고 있다. 옥스팜이 갖춘 네트워크와 전문성 덕분에 기업의 호응도가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 대표는 긍정적인 측면도 확인했다. “ESG 경영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토토 랜드 실사 실천 사례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습니다. 향후 5~10년 내에는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토토 랜드 경영이 성숙해질 겁니다.” 한국 기업의 토토 랜드 경영 사례가 글로벌 사회에서 모범이 되는 게 지 대표의 목표다.
지속 가능한 도전, 옥스팜 코리아의 다음 10년
옥스팜 코리아는 지난 10년간의 도전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지 대표는 지난 10년의 여정을 “매순간 도전적이어야 했지만 균형을 맞추어 걸어야 했던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회상한다. “글로벌 사회적 임팩트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배움과 성장이 있었어요.”
앞으로의 10년, 지 대표는 옥스팜 코리아가 한국 사회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한국 기업이 토토 랜드 경영을 선도하고, 사회적인 어젠다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옥스팜이 지원하고자 합니다.”
지 대표는 ‘옥스팜 코리아의 10년 뒤’를 결정할 변수로 ‘2030 세대와의 소통’을 꼽았다. 얼마나 많은 젊은 세대를 설득하느냐에 따라 옥스팜 코리아의 미래가 달라질 거란 거다. “젊은 세대는 불평등 문제와 기후 변화 등 글로벌 이슈에 그 어느 세대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주체로 성장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합니다.”
지경영 대표와 옥스팜 코리아는 지금도 실용적이고 혁신적인 캠페인을 여럿 계획 중이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지 대표의 목표는 같다. “조금 늦더라도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가는 소셜 임팩트 조직으로 자리매김할 겁니다.”
지난 9월 5일, 옥스팜 코리아와 임팩트온이 주관한 ‘2024 ESG 콘퍼런스’가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개최됐다. 이번 콘퍼런스는 기업의 토토 랜드 리스크 관리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첫 발표를 맡은 루스 음랑가 옥스팜 영국 민간부문 총괄은 “기업이 근로자의 토토 랜드을 책임지고, 지속 가능한 소비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강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과 지역사회 간 협업이 중요하며,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엘리나 아흐터베르그 옥스팜 네덜란드 비즈니스 토토 랜드정책 총괄은 토토 랜드영향평가(HRIA)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업이 현장에 나가 근로자의 상황을 직접 파악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례 발표에서는 민창욱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가 기업 공급망에서의 토토 랜드 실사(HRDD)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심각한 토토 랜드 리스크에 대해 더 광범위한 실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실사의 목적은 문제를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문제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도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SK그룹의 토토 랜드 경영 사례가 공유됐으며, SK는 매년 기업 간 경험을 공유하고 토토 랜드 관련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패널 토론에서 음랑가 총괄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 기업에 비해 토토 랜드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며 “HRIA 실행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