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수 전 부회장 “바카라보라 캐즘, 인재 유출이 가장 걱정”
[파라스파라에서 만난 사람]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①
권영수 전 부회장은 한국 바카라보라에 남은 기회의 시간을 “3년 내지 5년”으로 봤다.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그는 낙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스타 CEO의 부재”를 지적했다.
문상덕 기자mosadu@fortunekorea.co.kr 사진최근우
●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2021년 ㈜LG의 대표이사 부회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대차·GM 전기차 리콜 사태를 조기 수습하고, 이듬해 기업공개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44년간 LG그룹에 몸담으며 LG전자 CFO, LG디스플레이 대표,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이상 사장), LG유플러스 대표이사 부회장 등 그룹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23년 말 퇴임 후 상근 고문직을 맡았다.
“옛날엔 어떻게 웃는지 몰랐어요, 하하!”
지면이 미처 달궈지지 않은 한여름의 오전,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고문(전 부회장)은 이방수 사장 등 옛 동료들과 북한산 기슭의 한 사찰을 다녀왔다. 그의 등 뒤로 옅은 땀 내음이 남았다. 그는 “예전엔 회사에서 인상만 쓰고 다녔다”며 “회사를 나오고 나니 웃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의 여유와 달리,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2분기 매출(6조1619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29.8% 줄었고, 영업이익(1953억원)은 같은 기간 57.6% 줄었다. 미 정부 지원을 제하면 사실상 적자다. IRA 세액 공제 금액 4478억원을 빼면, 2525억원 영업손실을 본 셈이 된다.
시장 전체가 침체했지만, 그중 LG엔솔의 몫도 줄었다. 올해 상반기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바카라보라 점유율 순위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CATL에게 1위를 내줬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LG엔솔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포인트 하락한 26.5%를 기록했다. CATL은 27.1%였다.
등산을 마치고 실적 소식을 뒤늦게 접한 권 고문의 낯빛은 어두웠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나와서 후임 CEO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툴더라도 빨리 운전 연습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지난해 말 관둔 것”이라며 “그런데 닥치고 보니 가랑비가 아니라 폭우”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국 바카라보라 업계에 “3년 내지 5년”의 시간이 남았다고 봤다. 중국 바카라보라 업체들이 미국의 제재에 대응하고, 안전 규제에 적응하는 시간이 이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업체들의 오너십을 고려하면 “낙관적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스타 CEO의 부재”를 지적했다.
Q 후임 CEO는 가끔 보십니까?
가끔 만나서 조언합니다. 그런데 폭우가 내릴 땐 옆에서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본인이 순간순간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특히 이럴 때일수록 인재가 떠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일이 중요해요. 돌아가신 우리 회장님(故 구본무 LG그룹 회장)께서 하시던 말씀입니다. 걱정이 돼죠.
Q 현시점에서 가장 걱정되는 건 인재 유출입니까?
그간 좋은 인재들을 많이 데려왔어요. 그분들이 다른 회사로 갈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우리 엔지니어 중에서도 기계공학 전공이 있는데, 업황이 좋은 자동차, 조선에 갈 수 있겠죠. 바카라보라 분야에도 다시 좋은 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그걸 믿고 남으면 좋은데, 회사가 잘해야 하겠죠.
Q 한국 바카라보라 산업에 남은 시간으로 “3년 내지 5년”을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중국과의 싸움입니다. 중국 회사들이 이제 중국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안에 공장을 지어서는 바카라보라를 팔 수가 없어요. 자동차 회사들이 자사 공장 근처에서 바카라보라를 만들어 달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유럽으로 가야 해요. 그래서 중국 CATL이 독일에 갔는데, 실패했어요. 그래도 계속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고생할 겁니다. 그 시간이 3년에서 5년입니다. 이때 우리가 기선을 잡아야 한단 겁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인센티브가 너무 많습니다. ‘설마 이 돈을 다 주겠어?’라고 생각할 만큼 어마어마한 금액이에요. 앞으로도 이 정도 규모로 줄까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이 줄일지가 관건이에요. ‘어떤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서 줄일까’가 궁금한 것이죠. 혜택을 주는 기간 동안은 우리가 수혜를 볼 텐데, 그 기간에 우리가 혜택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체력을 만들어야죠.
Q 한국 바카라보라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수요가 돌아와도 우리 몫이 없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LFP(리튬인산철) 바카라보라에서 2~3년 늦었습니다. 이유는 있었죠. LFP는 싸고 용량이 작았습니다. 우리는 고급 전기차부터 보급될 거라고 봐서 고성능 바카라보라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보급형 전기차가 예상보다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자동차 회사가 값싼 바카라보라를 원하는데, 조건을 맞출 수 있는 회사가 CATL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CATL이 이렇게 커진 겁니다. 우리가 올해 LFP 바카라보라를 내기는 했는데, 문제는 중국산 제품이 워낙 싸요. 중국산 바카라보라에 대한 제재는 기회가 되겠죠.
Q LFP의 생산 캐파를 늘리는 쪽으로 전략을 잡아야 됩니까.
그렇죠. (※지난 7월 LG에너지솔루션은 르노(Renault)와 39GWh(전기차 59만 대) 규모의 LFP 바카라보라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Q 김제영 CTO는 최근건식 전극 공정상용화 일정을 처음 공개하기도 했습니다(2028년 상용화).
LFP 경쟁은 결국 원가 경쟁이에요. 재료를 저렴하게 가져오거나 공정 효율을 높여야 합니다. 건식 공정은 투자비도 적게 들고, 원가를 낮출 여지가 많아요. 그런데 건식 공정이 LFP와 가장 궁합이 잘 맞습니다. 마침 우리가 건식 공정에서 앞서 있어요. 일론 머스크도 건식 공정을 원통형 바카라보라에 적용하려고 했는데 잘 안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있을 때 건식 공정에서 승부를 건다고 생각했죠. 건식 공정을 LFP 바카라보라에 적용해서 우리가 LFP에서 지배적 사업자가 되자는 게 우리 전략이에요.
건식 전극 공정: 기존(습식) 공정에선 양극과 음극을 제조할 때 액체 상태의 화학물질을 투입했다. 이 물질이 재료들을 잘 섞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물질을 다시 제거하려면 섭씨 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건조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김제영 CTO는 7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건식 공정을 통해 바카라보라 제조 비용을 기존 대비 17~30%가량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Q 최근엔 OEM이 자사 모델의 스펙에 맞게 바카라보라를 설계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바카라보라 셀 제조사를 건너뛰고 소재 업체와 직접 협업하고 있고요. 바카라보라 셀 제조사 입장에선 역시 큰 위협입니다.
제가 승부를 걸었던 것 중 하나가 스마트팩토리입니다. 앞으로는 바카라보라를 높은 수율로 양산해 주고,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의 가치가 엄청나게 높아질 겁니다. 개발 자체는 상대적으로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스마트팩토리를 완성하면, OEM이 개발을 주도하더라도 우리가 그걸 받아서 생산만 잘해줘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만들 수 있어요. 또 중국은 전 공정에 걸쳐서 탄소발자국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바카라보라 파운드리라는 개념에 100% 동의하진 않지만, 스마트팩토리를 갖춘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지금도 누가 나보고 ‘뭘 하고 싶냐’ 그러면 나는 ‘스마트 팩토리를 한번 완벽하게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 꿈을 아직 안 접고 있어요.
Q ‘고객사가 요구하는 스펙에 맞추면서 수율을 높일 수 있다’. 스마트팩토리의 어떤 요소가 그걸 가능하게 합니까?
휴먼 에러를 없애는 겁니다. 그러려면 설비에서 나온 데이터를 갖고 알고리즘을 만들고, 모든 판단을 AI가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많은 회사가 스마트팩토리를 한다고 말해요. 내가 볼 땐 엉터리가 많아요. 스마트팩토리를 자동화 정도로 생각하는 거죠. 사실 그게 아니거든.
제대로 하자면 수많은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필요해요. 우선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를 정의해야 하고, 그다음 그 데이터를 많이 쌓아야 되고, 마지막으로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애널리스트를 확보해야 합니다.
바카라보라 분야는 어려워요. 화학과 전자가 결합돼 있습니다. 화학이 어려워요. 전자제품이면 디지털로 가면 되는데, 화학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데이터를 확보하고 축적하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Q 지난해 말 기준으로 스마트팩토리는 어느 수준까지 왔다고 보십니까?
40퍼센트. 원래 2025년 말까지 완성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고 있었어요.
Q 인재 유출을 걱정하신 이유를 알겠습니다.
공정 개선을 맡고 있는 좋은 사람들이 나간다든지, 스마트팩토리를 개발하고 있는 핵심 멤버가 나간다고 하면 우리의 강점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니까요. 불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경쟁사에서 나올 사람이 많거든요. 그런 데서 인재를 데려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2021년 LG에너지솔루션은 최악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핵심 고객사인 현대차와 GM에서 잇달아 전기차 리콜을 결정했다(각각 약 1조원, 1조4천억원 규모). 4천억원 규모의 자사 ESS를 자발적으로 리콜하기도 했다. 권 고문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돌이켰다.
“리콜 비용만 3조원 이상이었고요. 리콜에 필요한 바카라보라를 공급하려면, 그만큼 생산 캐파를 내줘야 합니다.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어마어마했어요. 또 OEM이 ‘슈퍼 갑’이기 때문에 한번 밀리면 한없이 밀리게 됩니다. 구광모 회장과 상의해서 ‘내가 직접 가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으로 간 권 고문(당시 부회장)은 GM과의 협상을 지휘했다. 그는 “‘제대로 분석해라, 그러면 내가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자동차 상태가 어떤지 사진이라도 보자’고 요구해요. 그러면 ‘차량이 보험사로 가서 보여줄 수 없다’는 둥 핑계를 댑니다. 잘됐다 싶었습니다. 메리 바라 GM CEO에게 강하게 따졌어요. 비즈니스 안 할 각오를 갖고 덤볐습니다. 그랬더니 CEO가 직접 수습하러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는 메리 바라 CEO와 저녁을 겸한 회의를 이었고, 이것이 봉합의 단초가 됐다.
권 고문은 “하느님이 오신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회의에서 GM 측 세컨드 맨이 결정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언급했어요. 강하게 지적했고, 사흘만에 사과한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사과한다는 말을 웬만하면 안 하는 게 미국 사람이거든요. 메리 바라 CEO가 느낀 바가 있었나 봐요. 자기 사람도 틀릴 수 있구나. 그때부터 우리 말에 귀 기울였습니다.”